정의용 입장문 논란 일파만파… "檢, 文 보고 여부 등 규명해야"

“헌법 해석 잘못하고 있어” 비판도北 인도 어선 범행 증거 될 수 있어한변, 18일 文 전 대통령 검찰 고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문재인정부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책임자인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7일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내놓으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귀순 의사의 진정성 결여”, “자백만으로 처벌 불가능” 등 주장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검찰 수사는 정 전 실장이 문 전 대통령에게 사건 관련 보고를 했는지, 문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등을 가려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흉악범들, 탈북민도 귀순자도 아니다?정 전 실장은 ‘흉악범 추방 사건’이라면서 “탈북민도 아니고 귀순자도 아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선 남북 관계 이중성을 인정하고 북한이나 북한 주민에 대해 외국이나 외국인 지위에 준해 개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했다.이에 대해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명예회장은 “(탈북 어민들이) 흉악범이기 때문에 헌법상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헌법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탈북 어민들은) 북한이탈주민법이나 출입국관리법, 난민법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북한이탈주민법 제9조에 ‘보호 여부를 결정할 때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그 보호 결정은 주택 공급이나 정착금 지원을 안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 지위 자체를 박탈한다는 게 아닙니다.또 난민법이나 출입국관리법은 외국인과 무국적자를 상대로 하는 거지, 헌법상 국민에게는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귀순 진정성 의심돼도 북송 법적 근거 없어정 전 실장은 “정부는 귀순 의사 표명 시점이나 방식 등에 비춰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통일법정책연구회장인 박원연 변호사는 “이번 귀순 의사 진정성 여부의 법적 쟁점은 위장 탈북이 아닌 이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을 때 강제 송환을 할 수 있느냐”라면서 “진정성이 의심된다 하더라도 강제 북송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그동안 귀순 의사를 따졌던 건 두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다. 우선 정말로 귀순 의사 없이 표류하다가 우리나라로 넘어온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 사람들의 귀순 의사가 없었던 게 확실하고,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자유의사를 표시하니 상호 인도주의에 따라 북한에 보내 줬습니다.두 번째는 위장 탈북자, 즉 간첩이거나 북한 주민이 아닌데 탈북자로 위장해 들어온 경우입니다. 이들은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는 걸로 판단하고 국가보안법 등에 따라 처벌했지요.그런데 북송 어민들은 위장 탈북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의심된다 하더라도 강제 북송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겁니다. 심지어 귀순 의향서를 썼고,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자유의사를 피력하지도 않은 이들을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북송했으니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겁니다.”국회의원을 지낸 박선영 전 동국대 교수(법학)도 “귀순 의향서를 직접, 자발적으로 작성한 이상 귀순 의사의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며 “그건 정부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일축했다.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지난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자백만으로 처벌 불가?…‘증거물’ 어선 왜 北에 보냈나정 전 실장은 또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이런 흉악범들도 우리 국민으로서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의 자백만으로는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했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은 “처벌할 수 없으면 무죄가 돼야지, 자백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으니 북한으로 보냈다는 거냐”며 “우답”이라고 비판했다.정부가 강제 북송 다음 날인 2019년 11월8일 범행 현장이자 증거물인 목선을 북한에 인도한 것도 논란이다.박선영 전 동국대 교수는 “자백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목선을 증거물로 활용했으면 됐다”면서 “혈흔 조사를 했어야지 왜 소독해 보냈는가”라고 반문했다.박원연 변호사도 “목선 자체가 범행 현장이니 혈흔이 발견된다면 증거가 될 수 있고, 어민들의 자백 진술도 서로가 공범이니 쌍방의 범죄에 대한 증거로 성립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 변호사는 “더 나아가 북한에 사법 공조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며 “사법·수사 공조의 기틀을 닦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김태훈 한변 명예회장은 “증거 인멸은 정 전 실장이 했다”며 “어선을 남겨 둬야지 왜 보냈나. 말이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변호사 단체, 文 고발…“‘국민 생명·안전 보호’ 직무유기”한변은 18일 오후 1시 서울중앙지검에 문 전 대통령을 살인 등 혐의로 고발한다. 이와 관련해 김태훈 명예회장은 검찰에 “문 전 대통령이 진짜 (북송) 보고를 안 받았는지를 집중적으로 규명해야 한다”며 “문 전 대통령의 직무유기 혐의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정 전 실장이 (북송은) 자기가 결정했고 문 전 대통령에게는 보고를 안 했다고 해요. 이는 정 전 실장이 정부조직법과 대통령령인 국가안보실 직제를 위반한 겁니다. 국가안보실은 대통령 명령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못 해요. 왜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어떤 동기로 그랬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합니다.그리고 2019년 11월7일 국회에서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북송 관련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게 딱 (사진이) 찍혔잖아요. 야당 의원들이 보내지 말라고 항의했는데도 그날 오후 3시 강제 북송을 한 건데, 그때쯤은 문 전 대통령도 알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왜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뒀는지 수사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일차적 책임이 있습니다. 이건 직무유기입니다.”정부조직법상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국가안보실을 두게 돼 있다. 국가안보실 직제는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가안보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못 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