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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미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적금 이자 계산기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콘텐츠 제작과 전파에 큰 힘이 됩니다.
청아한 울림의 비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호아킨 소로야, Beach Rogues, 발렌시아, 1899, 캔버스에 유채, 72x12 대전 집값 2cm, Fine Arts Museum of Asturias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바닷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말소리.
그것은 낭랑하고, 청아한 음이었다. 아이들의 새하얀 치아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한없이 순수에 가까운 울림이었다.
1899년, 스페인 발렌시아 농협신용카드연체 해변.
호아킨 소로야는 가벼운 화구를 챙겨 나왔다. 여느 때처럼 어부를 눈과 손으로 보고 담을 계획이었다. 떨어지는 땀방울과 물줄기, 굵은 팔뚝과 억센 그물을 종이에 옮길 마음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노동자의 성취를, 거기에 서려 있는 애환을 담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저 멀리 천안 아파트 전세 물결 가까이서부터 닿는 무해한 웅성임. 이를 의식하게 된 순간,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소로야는 몸을 옮겼다. 바다를 향해 더 바짝 붙었다. 순박한 기운의 주인공들, 물결과 어우러져 있는 한 무리의 실루엣을 향해.
호아킨 소로야, study f 베네딕도수녀회 or 슬픈 유산
차츰 선명하게 보였다.
소로야는 먼저, 검은 옷의 사제를 볼 수 있었다. 이어 그와 함께 온 어린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꼬마들은 햇빛 아래서, 물 위에서 벌거벗은 채 물방울을 튀기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꼬마 중 상당수는 얼굴이 뒤틀려 있었다. 눈을 감고 있거나, 목발을 짚은 아이도 적지 않았다.
아. 소로야는 낮게 신음했다.
그제야 이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를 어르는 사제는 인근 산 후안 데 디오스 병원(hospital of San Juan de Dios)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함께 온 이 작은 존재들은…
슬픈 유전, 슬픈 유산
병원장 허락을 구하다
호아킨 소로야, 발렌시아 해변의 어린이들, 1908, 캔버스에 유채, 81x106cm, 개인소장
눈멀고,
미치고,
장애가 있거나,
병에 걸린 상태였다.
훗날 소로야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랬다. 물가에 있는 아이 중 적지 않은 이가 환자였다.
당시 유행했던 성병 매독, 또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부모로부터 성치 못한 몸을 물려받은 존재였다. 어른의 일탈, 그게 아니면 사회의 무시와 세상의 외면이 낳은 새하얀 희생양. 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것을 통한 물리치료를 위해 나온 모습이었다.
잠시 들뜸이 깃들었던 소로야의 눈에는 이제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힘껏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
소로야 앞에선 이런 문장이 아른거렸다. 그러자 마음 한편에서 또 다른 벅참이 피어올랐다. 이는 직전에 품은 감정보다 더 묵직한 무언가였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병원장에게 허락을 구했다. 장면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그릴 수 있도록).” 가까운 미래, 소로야는 이렇게도 회상한다.
호아킨 소로야, 슬픈 유산, 1899, 캔버스에 유채, 210x285cm, 반카하 파운데이션
사제가 목발 짚은 소년을 조심스럽게 일으킨다.
부드러운 모래사장 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갈비뼈와 넙다리뼈가 훤히 보이는 이 소년은 지난한 투병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그리고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로. 뒤에 선 아이들 또한 어떻게든 홀로 서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어다니고, 목발을 쥐고, 특이하게 배만 볼록 튀어나온 그런 아이들은 짙푸른 물속, 물 바로 앞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맑은 듯 서글픈 그림이자 찬란한 듯 처연한 작품. 소로야는 이 작업물에 이런 제목을 붙인다. <슬픈 유산(Sad Inheritance)>. 이는 푸르른 배경에 처연함을 끼얹는, 한편으론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찌든 우리네 사회 이면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기도 했다.
아울러 소로야는 <슬픈 유산>을 그릴 무렵부터 본인의 화풍도 확 바꿔버린다. 대체 왜?
대부분 사람은 소로야를 그저 해맑은 해변의 화가로 기억한다. 소로야가 (‘슬픈 유산’이란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러한 사회 참여적 결과물을 내놓은 점은 비교적 널리 퍼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로야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고, 그가 어쩌다 바다의 예술가가 됐는지를 탐구하는 글이다.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부모
벨라스케스·고야에 취하다
호아킨 소로야, 어머니, 1895, 소로야 박물관
소로야가 어릴 적부터 큰 불행을 마주했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1863년 스페인의 항구 도시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소로야는두 살 때 부모를 잃었다. 사인은 콜레라였다.
친척 집으로 간 소로야는 마냥 천진난만하지만은 않은 아이로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면은 애초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발현(發現)됐을 수도 있다.
소로야는 열다섯쯤부터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열여덟 살에는 더 큰 도시, 마드리드로 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프라도 미술관에서 모국 대가들의 그림을 베껴 그렸다. 특히나 그는 묵직한 기법의 디에고 벨라스케스, 기괴하고 음침하기까지 한 화풍의 프란시스코 고야가 내놓은 작품 앞에 긴 시간 서있었다.
나고 자란 환경, 보고 익힌 교재(敎材)…. 모든 건 그의 마음속 구석진 감성을 건드리고 있었다. 활동 초기 소로야가 어딘가 씁쓸한 뒷맛의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였다.
그녀는 뭘 잘못했을까
‘바다 그림’ 아닌 출세작
호아킨 소로야, 또 다른 마그리트, 1892, 캔버스에 유채, 130.1x200cm, 밀드레드 레인 켐퍼 미술관
젊은 여인이 기차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다.
슬쩍 드러나는 눈빛에선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후회 따위가 묻어나는 듯하다. 그녀는 무슨 일을 그르쳤을까. 뭘 잘못했기에 두 손목에는 사슬까지 걸려있을까. 그녀의 처량한 모습은 감옥,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처형장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곳이 어디든 짐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웬만한 아기보다 작은 봇짐에는 최소한의 물품만 담겨있을 게 분명하다.
그녀 뒤에는 군복 차림의 두 남성이 총을 안은 채 앉아 있다. 이런 일이야 흔하다는 양 눈빛도, 표정도 사무적인 모습이다. 소로야는 이 여성을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직접 봤다고 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바퀴 위 공포와 죄책감. 퀭한 여죄수의 지극히 솔직한 순간을 그린 1892년 그림, 제목은 <또 다른 마그리트>였다.
소로야는 이 그림으로 마드리드 국립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또, 얼마 후 시카고 국제 박람회에서도 이 작품 덕에 1등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제대로 된 출세작은 이처럼 사실주의적 요소가 짙게 밴 결과물이었다. ‘바다 그림’이 아니라.
사회는 왜 이럴 수밖에…
애처로운 그림을 그리다
호아킨 소로야, 아직도 생선이 비싸다고 말하는가!, 1894, 캔버스에 유채, 151.5x204cm, 프라도 미술관
소로야는 그 시기에 사회상 조명을 넘어 세상에 던지려는 말이 또렷한 작품도 남겼다.
<아직도 생선이 비싸다고 말하는가!>가 그것이다.
앳된 사내가 배 바닥에 쓰러진 채 버둥대고 있다. 나이 든 어부 둘이 곁에 있는데, 상황이 영 심상찮다. 자세히 보면 상처를 누르는 천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성은 거친 뱃일 중 다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날카로운 사물 천지인 이곳에서 잘못 넘어졌을지도, 힘껏 물고기를 낚아 올리다 그물코 따위에 살이 꿰뚫렸을 수도 있다.
그저 방심한 대가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배 위 환경이 너무도 열악하다. 깊이 팬 주름살과 찢기고 뜯긴 옷, 손톱 밑까지 새까매진 손. 당장 수십년 경력의 베테랑일 듯한 두 뱃사람의 행색이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생선이 비싸다고? 우리는 피와 땀, 목숨을 걸고서 나서고 있는데….
이 순간 세 남자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소로야만큼은 위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으리라는 점이다.
호아킨 소로야, 백인 노예무역, 1895, 캔버스에 유채, 소로야 박물관
소로야는 <백인 노예무역> 같은 그림도 그렸다.
화폭에는 매춘부로 팔려가고 있는 듯한 네 백인 여인이 그려져 있다. 이들을 안쓰럽게 보는 노파는 그녀들의 감시역 내지 안내인일 것이다. 먹을 입을 하나 줄이기 위해, 또는 집에 푼돈이나마 부치기 위해 나섰을 이들은 잠든 모습 자체로도 애처롭다.
우리네 사회는 왜 이럴 수밖에 없는가. 이들이 노예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이번에도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슬픈 유산’을 마주한 마음은
호아킨 소로야, 발렌시아 해변의 아이들, 1919, 캔버스에 유채, 70x100cm, 개인소장
구슬픔과 씁쓸함.
소로야는 이런 회화의 연장선에서 <슬픈 유산>을 작업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선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 그랑프리, 1901년 마드리드 국전에서 명예 메달을 받았다. 화가로 정점에 오른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아직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소로야는 <슬픈 유산>을 끝으로 특유의 무거운 그림 그리기를 멈춘다. 앞서 언급했듯 화풍을 확 바꿔버린다. 그는 이 무렵부터 파랑의 화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지금도 많은 이가 사랑하는, 말갛고 푸르른 바다와 해변을 그리는 예술가로 거듭나게 된다.
왜. 이 그림은 어쩌다 ‘터닝 포인트’ 역할을 했을까.
우선 소로야는 <슬픈 유산>을 그리며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았다. 아픈 아이들에 대한 그림은 지금껏 그린 안쓰러운 작품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소로야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가했다.
그는 붓질을 할수록 일찍 부모를 잃은 본인과 아이들의 처지를 포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연한 개인사를 이입하는 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겠지만, 스스로에게 매순간 깊은 통증을 가하는 일이었을 터였다.
호아킨 소로야, The Cabin Boy, 1899, 캔버스에 유채, 44x64cm, Museu Nacional de Belas Artes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슬픈 아이들의 존재는
나에게 고통스러운 인상을 안겼다.
이는 그의 실제 회고였다.
“다시는 그런 주제를 그리고 싶지 않다. (이 그림은)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설에 가깝지만, 소로야를 다룬 몇몇 2차 문헌에선 그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도 전하고 있다.
외부 시선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소로야는 <슬픈 유산>을 스페인 정부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결과는 거절. 정치권의 반대가 이유였다.
이렇게 혼을 실은 그림조차 ‘정치적’ 문제 앞에선 흔한 종이 한 장에 불과하구나. 아무리 문을 두드린들 세상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겠구나. 그는 이러한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리라. 이 일 또한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여행 중 접한 인상주의에 감명을 받고 화풍을 바꿨다는 말도 있긴 하다.
다만 정확히 무슨 계기가 어떤 수위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영영 알 수는 없을 테리라.
빛과 바다 아이가 있는
발렌시아 해변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 해변 따라 달리기, 발렌시아, 1908, 캐버스에 유채, 90x166.5cm, 아스투리아스 미술관
언제나 발렌시아로
돌아갈 생각만 해요.
그 해변으로 가서
그림을 그릴 생각만 하지요.
<해변 따라 달리기>.
어느덧 소로야는 고향 발렌시아 해변 위 이런 풍경만 그리기 시작한다. 벌거벗은 소년이 웃으며 달린다.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두 소녀가 잡힐 듯 말 듯 도망친다. 아이들의 발목은 일렁이는 물결 덕에 시원함을 맛보고, 짙푸른 물살은 아이들의 싱그러움 덕에 더욱더 생기를 얻는다.
보다 보면 짭조름한 소금 향을, 푹푹 꺼지는 모래의 부드러움도 상상할 수 있다. 이 모든 느낌을 버무려 만들 수 있는 건 여유와 평화의 감정뿐이다.
“가뜩이나 불쾌한 게 많은 세상 아닌가. 굳이 아름답지 않은 걸 그릴 필요가 있겠는가.” 즉, ‘그림이라도’ 밝게 그려보자. 선배 화가격인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깨달음을 이제라도 따르기로 한듯, 그렇게 행복의 화가로 착실히 거듭나는 모습이었다.
호아킨 소로야, 해변의 소년들, 1910, 캔버스에 유채, 118x185cm, 프라도 미술관
<해변의 소년들>도 귀여운 작품이다.
옷을 훌렁 벗은 아이들이 바닷물 섞인 모래에 눕는다.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갈 때마다 알알이 느낄 수 있는 간지러움, 물 먹은 흙바닥 특유의 말캉한 부드러움을 즐긴다. 발바닥을 바짝 세운 채 온몸으로 계절을 만끽한다.
소로야의 바다 그림은 어떤 면에선 그의 옛 화풍을 일부 계승(繼承)하는 모습도 보이기는 했다.
필요한 부분은 정성껏 그리되,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단박에 캔버스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그렇다. 가령 소로야는 해변을 그릴 때 굳이 하늘 묘사에 공들이지 않았다. 되레 물과 사람으로 시선이 쏠리게 했다. 그쪽으로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호아킨 소로야, 물놀이의 시간, 1909, 소로야 박물관
빛의 각도와 세기에 맞춰 과감하게 다른 색을 칠하는 인상주의 기법을 적극 활용한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당시 인상주의는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몇몇 비평가는 소로야를 스페인의 인상주의 선구자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합니다”
가장 사랑했던 건, 역시나 가족
호아킨 소로야, 목욕 후, 1915, 캔버스에 유채, 130x150.5cm, 소로야 박물관
바다의 청명함과 사랑에 빠진 소로야가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건 또 있었다.
가족이었다.
앞서 소로야는 스물다섯 살이었던 1888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상대는 그와 수년간 소통했던 두 살 연하 모델, 클로틸데였다. 소로야는 2년 후 첫딸 마리아의 볼을 꼬집을 수 있었다. 이어 아들 호아킨, 막내딸 엘레나도 안아볼 수 있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에게 아내는, 딸과 아들은 존재 자체로 영롱한 꿈이자 거대한 우주였다.
(…)내 하루에 대해선 이미 말했지요.
나는 늘 같은 말만 해요.
그림을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그게 전부죠.
소로야는 집만 비우면 가족에게 이런 달콤한 글을 쓰곤 했다.
호아킨 소로야, 바닷가 산책, 1909, 캔버스에 유채, 205x200cm, 소로야 박물관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결합.
이는 예술가라면 꼭 도전하고 싶은, 나아가 기필코 창조하고 싶은 필생의 과제일 것이다. 소로야에게 그것은 바다와 가족이었다.
두 여인이 해변을 걷는다. 한쪽은 아내 클로틸데, 또 다른 쪽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딸 마리아다.
이들은 옅게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여름 바다의 따뜻한 빛 아래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 곁에서 시간을 유영한다. 둥근 챙 모자와 양산, 일자로 맞춰 쓸려오는 파도, 반짝이는 윤슬이 분위기에 단정함을 더한다. 맑은 바다, 촉촉한 모래, 은은한 웃음을 머금은 가족. 사랑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기에 모두 다 그렸다. 휘갈기듯 찍어바른 붓 자국에선 설렘을 엿볼 수 있다. 거기서부터 뻗어나가는 행복의 열감도 느낄 수 있다.
소로야는 성공했다. 사랑과 사랑을 더해 더 큰 사랑으로. 이 과제에 임해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고 만 것이다.<바닷가 산책>은 지금도 소로야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발렌시아로 옮겨진 시신
마지막엔 수천명 추모객
호아킨 소로야, 오후의 태양, 1903, 캔버스에 유채, 299x441cm, 미국 히스패닉 협회
소로야는 1923년 여름에 사망했다. 당시 나이는 예순 살. 세상을 영영 등지기에는 아직 아까운 숫자였다.
소로야는 죽기 3년 전인 1920년께 갑자기 뇌졸중을 겪었다. 이 때문에 몸 일부가 마비되는 경험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집의 정원과 주변 풍경을 그리는 등 작업을 했지만, 그것보다 더 힘이 드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소로야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간 것이었다.
세르세디야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숨진 그는 기차에 올라 발렌시아로 옮겨졌다.
고향 땅에서 기차 문이 열리는 순간, 수천명 추모객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발렌시아에선 그를 위한 장례식을 크게 치렀다.
호아킨 소로야, 발렌시아 해변의 소녀, 1910, 캔버스에 유채, 69x100cm, 개인소장
소로야의 그림은 그냥 봐도 좋고, 해석을 하고 봐도 좋다.
낭만과 로망을 함께 자극하는 서정성은 깊은 여운도 이끈다. 그의 붓이 다루는 주제는 달라졌지만, 본질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모든 그림에 저마다의 최고의 사랑을 찍어낼 수 있는 예술가였다. 예쁜 그림만 그리는 화가는 많지만, 단지 ‘예쁘기만은 하지 않은’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화가는 흔치 않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되는 이유다.
<참고 자료>
호아킨 소로야 인생의 그림, 호아킨 소로야, 블랑카 폰스-소로야, 에이치비 프레스
Joaquin Sorolla, Sorolla, Joaquin, Skira
기자의 말풍선
독자님들의 응원덕에 쓸 수 있었던 올여름의 새 책, <여름이라는 그림>이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과분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3년 넘게 매주 8000자 안팎 분량의 <후암동 미술관>을 쓰면서 저 또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로, 참신한 도전으로 부단히 인사드릴게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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