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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줌(ZOOM)] 바~바~ 바이든으로 놀림 받았던 소년, 최고령 대통령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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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한 20-11-14 12:05 1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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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화려한 정치 인생 이면에 불운한 가족사
'질 바이든'과의 재혼으로 안정 찾아
'챔프' '메이저' 유기견 데리고 백악관 입성 예정
무색무취 VS. 유연한 협상가
"79세, 나이는 문제 안 될 것"...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할도 중요
'책임 있고 품격 있는 패권국가' 미국의 공신력 회복 기대
■ 방송 : 시사토크 알고리줌(ZOOM) 이슈이슈 (금요일 밤 11시)
■ 진행 : 이경재 앵커
■ 출연 : 봉영식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알렉스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 석사, 방송인
[이경재 앵커]
우리 나이로 79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 미국의 46대 대통령 당선인입니다. 어렸을 때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친구들이 '바 바 바 바이든' 이렇게 놀렸다고 합니다. 30살 최연소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서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살아온 50년의 화려한 이력 이면엔 사랑하는 가족의 잇따른 죽음 등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슈이슈에서는 이분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겠습니다. 가급적 바이든과 좀 접점이 있는 분들을 모셨는데요. 저희 이슈이슈가 사실은 이슈의 당사자를 모시는 거라, 옆에 있는 지금 바이든 당사자를 모셔서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요. 마이크도 들고 있지 않습니까? 바이든 이 당사자가 좀 했을 만한 얘기들을 두 분께서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봉영식]
바이든 후보가 민주당의 상징색인 이제 파란색을 일부로 이렇게 입고 나왔네요.
[알렉스]
네. 저도요.
[봉영식]
조 바이든 후보가 이렇게 온화한 할아버지, 삼촌 같은 인상을 보이지만 사실 개인사에는 굉장히 비극적인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1972년도에 29세에 상원의원에 당선했는데 그때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딸하고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들과 자기는 살아났는데 그래서 상원의원 선서를 전통에 따라서 워싱턴 의회에서 하질 못하고 아들이 지금 있는 중환자 병실에서 했죠.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아꼈던 큰아들 보 바이든. 자신의 델라웨어 정치 승계자로 육성했던 큰아들을 2015년에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인 거죠.
[이경재 앵커]
그때도 굉장히 슬퍼했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봉영식]
그렇죠. 너무 슬퍼가지고 그때 대선도 포기했었지 않습니까? 근데 당선이 확정된 다음 일요일 주일에 가톨릭 신자로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입니다. 첫 번째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었고요. 그래서 항상 가던 근처에 이제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드렸는데 그 성당에 죽은 아들 보 바이든이 묻혀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들을 먼저 보냈는데 자기의 정치 경력을 이어줬으면 하는 그 자랑스러운, 전쟁 영웅이고 델라웨이 검사였던 아들이 묻혀있는 성당에서 당선인으로서 첫 주일미사를 드린 것이지요.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알렉스]
트럼프가 바이든을 '슬리피 조(sleepy Joe)'라고 많이 했죠. 슬리피 조, 너무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많이 하니까 그런데 그 연설 하기 전에 뛰어왔어요, 그냥.
[이경재 앵커]
아니. 자주 뛰시더라고요.
[봉영식]
일부로 그러는 거 같아, 일부러.
[알렉스]
일부러 한 거죠. 그래도 그때부터 좀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아마 생각보다 바이든, 저 원래도 잘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마 생각보다 예상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인상 받은 거예요.
[이경재 앵커]
예. 저는 뭐 여러 가지 어떤 메시지도 좋았는데 같은 이유일 거 같은데 연설 끝나고 제스처가 굉장히 전 인상적이었어요. 이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고 이런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어떤 세리머니 같은 그런 제스처 굉장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그런 모습들이 전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여러 대통령을 말씀해주셨는데 바이든은 존 에프 케네디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알려져 있고요. 또 지금 상황이 뉴딜을 이끌었던 루스벨트처럼 제2의 뉴딜을 이끌어야 될 그런 요구를 또 받고 있고 또 오바마 시절에 부통령이기도 하고요. 역대 이런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 바이든은 좀 어떤 인물에 좀 가깝다고 보시나요?
[봉영식]
바이든은 독자적인 대통령이라고 봐야겠죠. 코로나 사태 때문에 미국이 지금 전례 없는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바이든은 바이든 행정부 1기의 모습을 보이겠죠. 그런데 이제 바이든 후보가 이야기한 것은 미국이 너무 분열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밝은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나는 그 언제보다도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월요일에 코로나 대응 테스크 포스, 13명으로 구성된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출범시킨 것도 무엇보다 앞서서 만약에 대선에 승리한다면 첫 번째로 코로나 방역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그 공약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경재 앵커]
조금 전에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어린 시절 얘기도 해주셨는데 말을 조금 많이 더듬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학창 시절에 그렇게 성적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봉영식]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 토론에서 "나는 공부 잘했는데 넌 공부 못했잖아" 이렇게 놀렸죠. 조 바이든이 가정적이고 또 인격적인 정치 지도자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또 질 바이든, 재혼을 했죠. 그 첫 번째 부인이 돌아가신 이후에. 학교 교수님이시고요. 지금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죠. 그 도움이 굉장히 컸죠. 그래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이제 질 바이든한테 구애를 8번이나 했답니다, 결혼하자고. 몇 번이나 거절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봤대요. "너 조가 싫으냐?" "아니다. 조 정말 좋은 남자다. 나는 사랑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결혼을 망설이냐?" 했더니 질 바이든이 그런 얘기를 했대요. "조는 벌써 부인을 잃었다.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냐. 그리고 다시 나와 사랑을 하는데 만약에 결혼을 내가 함부로 결정을 해서 혹시라도 다시 부인을 또 한 번 잃게 된다면 이혼을 하든지, 사별을 하든지 이 사람은 무너진다. 나는 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청혼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그래요.
[이경재 앵커]
바이든의 성장 환경을 보면 부친이 용광로 청소도 하고 자동차 판매업도 하고 이랬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이잖아요. 이런 배경이 미국 내에서 아주 소수는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되진 않았나요?
[봉영식]
한계이자 이제 도움도 됐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는 말씀하신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은 러스트벨트, 경합 주를 이기지 않고는 불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굉장히 기득권, 기존 정치인의 이미지가 이제 풍기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정치적 이단아였는데. 그러니까 이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봤을 때 미국의 이제 블루칼라 계층에서 본다면 누가 더 본인들하고 가깝겠습니까? 조 바이든 후보거든요.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출신이었고,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그러니까 경합 주의 미국 유권자들이 조 바이든 후보를 택하게 된 거죠.
[알렉스]
네. 맞아요. 저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우리 가족은 아일랜드에서 왔으니까 조금 더 가깝게 느꼈어요. 그 때문에 오하이오주에 있는 가톨릭들이 엄청 그런 가까운 느낌이 있어서 조금 뭐 오하이오는 결국에는 트럼프로 갔지만 그 때문에 그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재 앵커]
바이든이 세 번째 도전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됩니다. 2016년에 경선에서 이제 포기를 했을 때 바이든이 앞으로 대선후보가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어떻게 보면 미국의 대통령도 이렇게 어떤 역사나 시대가 만들어준다는 느낌도 좀 받았거든요, 시대적인 상황이 바이든이 지금 뭐 코로나 상황도 그렇고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봉영식]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조 바이든 후보는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노쇠하지 않나. 기운이 있나. 이랬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 거죠. 하나는 누가 정말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인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중요하고 진실이 중요하고 정직해야 되는데 트럼프 4년 동안에 그런 게 없다고 많은 미국인들이 실망했거든요. 그러니까 믿을 수 있고 정직하고 안정감을 주는, 경험해 본 정치 지도자인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점점 더 신뢰가 가는 매력적인 후보자가 된 것이지요.
[알렉스]
맞아요. 그전에도 조 바이든이 민주당 경선 초반에 워런 그리고 버니 샌더스, 모든 후보자가 많았을 때 별로 한 번도 안 이긴 거 같아요. 그런데 워런도 1등이었고 샌더스 그리고 그때부터 아, 바이든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재 앵커]
이렇게 딱 저희를 내려다 보고 계신 데 조금 아까 얘기해 주셨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79살이에요. 그래서 좀 굉장히 많은 나이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벌써 그래서 건강상의 문제를 좀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봉영식]
어떻게 보면 많은 나이지만 또 100세 시대에 그렇게 많은 나이냐? 생각할 수도 있고 비교를 하자면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이 없앴던 백악관의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게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반려견을 데리고 백악관으로 가는 계획입니다. 제일 친한 개가 2마리가 둘 다 독일산 셰퍼트인데 챔프하고 메이저입니다. 왜 챔프냐 하면 챔피언의 약자죠? 그리고 조 바이든이 어렸을 때 이렇게 낙담하고 어려워할 때는 아버지가 헤이, 챔프. 넌 챔피언이야. 일어나. 이렇게 격려했던 기억이 나서 챔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두 번째 메이저는 2018년에 델라웨어에서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을 한 개입니다. 챔프는 개 나이로 12살입니다. 그러면 개 나이에 7년을 곱하면 사람 나이가 되죠? 그러면 84세예요. 어떻게 본다면 조 바이든 당선자보다도 챔프가 더 고령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뭐 챔프랑 조 바이든 후보가 고령자로서 백악관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그것도 하나의 화젯거리죠.
[알렉스]
뭐 저 같은 뭐 약간 젊은 사람들이 걱정 많이 했었어요. 그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민주당 젊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주 신경 많이 썼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만약에 뭐 물론 어떤 사건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나이 때문에 뭐 은퇴하고 싶을 때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 될 수 있으니까 그런 고민 많이 있었어요.
[이경재 앵커]
그런 이유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가 다음 대선에 나오지 않겠냐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요?
[봉영식]
그렇죠. 조 바이든 후보가 이제 출마하면서 정확하게 얘기한 것은 나는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면. 그거는 이제 앞으로 자기 자신의 거취, 건강 문제까지도 염두에 놓은 발언이었고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카멀라 해리스 같이 캘리포니아에서 상원의원을 했지만, 또 젊은 세대, 에너지 많은 신세대를 대표하는 러닝메이트를 지목한 거죠. 비단 여성 유권자와 흑인 유권자층의 표를 끌어온다는 목적보다도 슬리피 조. 아까 알렉스가 잘 얘기했지만, 자꾸 조 바이든 건강과 나이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데, 그것을 안심시킬 수 있는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택한 것이죠.
[이경재 앵커]
바이든이 정치적으로 무색무취에 가깝다. 이런 평가를 하는 분도 계세요. 그러니까 바이든 내세우는 깃발이 무엇이냐? 그러니까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이것이 또 달리 보면 합리적인 협상가라는 평가와 동전의 양면 같기는 하거든요. 이런 정치적인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봉영식]
조 바이든 당선인이 외교에 대단한 전문성과 인맥을 가진 정치가라는 걸 저희가 인정을 해야 됩니다. 부통령 8년에 오바마 행정부에서 했어요. 그게 그냥 무늬만의 부통령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한테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았을 때 조건으로 내걸은 것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그 행정부에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나를 패스하지 말아라. 부통령으로서의 나의 의견을 존중해라. 그거를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가 승낙했기 때문에 러닝메이트 직을 수락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정책에 깊이 관여한 부통령을 8년을 했어요. 그러면 이 상원의원으로서의 경력과 부통령으로서의 경력을 합치면 조 바이든 후보는 화려하진 않지만, 말을 조용히 하지만 굉장한 전문성과 인맥을 가지고 있는 당선인으로 봐야겠죠.
[이경재 앵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니까 기대도 있고 좀 걱정도 있을 텐데요. 직접 보고 좀 이렇게 당부하고 싶은 거 얘기 좀 해주시죠.
[알렉스]
환경을 위한 투자, 지원 많이 할 것 같아서 저는 조금 기뻐요. 그리고 진짜 두 당이 협력 잘 되는 거. 그거 걱정인데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영식]
조 바이든 당선자가 캠페인 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공신력을 회복하겠다. 더 이상 이렇게 다른 나라를 쥐어짜고 괴롭히고 몰아붙이는 나라가 아니라 책임 있고 품격이 있는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그 약속을 지키길 기대합니다.
[이경재 앵커]
네. 두 분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봉영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그리고 방송인 알렉스 씨였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알렉스]
네.
[봉영식]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 YTN plu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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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경재 앵커
■ 출연 : 봉영식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알렉스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 석사, 방송인
[이경재 앵커]
우리 나이로 79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 미국의 46대 대통령 당선인입니다. 어렸을 때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친구들이 '바 바 바 바이든' 이렇게 놀렸다고 합니다. 30살 최연소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서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살아온 50년의 화려한 이력 이면엔 사랑하는 가족의 잇따른 죽음 등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슈이슈에서는 이분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겠습니다. 가급적 바이든과 좀 접점이 있는 분들을 모셨는데요. 저희 이슈이슈가 사실은 이슈의 당사자를 모시는 거라, 옆에 있는 지금 바이든 당사자를 모셔서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요. 마이크도 들고 있지 않습니까? 바이든 이 당사자가 좀 했을 만한 얘기들을 두 분께서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봉영식]
바이든 후보가 민주당의 상징색인 이제 파란색을 일부로 이렇게 입고 나왔네요.
[알렉스]
네. 저도요.
[봉영식]
조 바이든 후보가 이렇게 온화한 할아버지, 삼촌 같은 인상을 보이지만 사실 개인사에는 굉장히 비극적인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1972년도에 29세에 상원의원에 당선했는데 그때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딸하고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들과 자기는 살아났는데 그래서 상원의원 선서를 전통에 따라서 워싱턴 의회에서 하질 못하고 아들이 지금 있는 중환자 병실에서 했죠.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아꼈던 큰아들 보 바이든. 자신의 델라웨어 정치 승계자로 육성했던 큰아들을 2015년에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인 거죠.
[이경재 앵커]
그때도 굉장히 슬퍼했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봉영식]
그렇죠. 너무 슬퍼가지고 그때 대선도 포기했었지 않습니까? 근데 당선이 확정된 다음 일요일 주일에 가톨릭 신자로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입니다. 첫 번째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었고요. 그래서 항상 가던 근처에 이제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드렸는데 그 성당에 죽은 아들 보 바이든이 묻혀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들을 먼저 보냈는데 자기의 정치 경력을 이어줬으면 하는 그 자랑스러운, 전쟁 영웅이고 델라웨이 검사였던 아들이 묻혀있는 성당에서 당선인으로서 첫 주일미사를 드린 것이지요.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알렉스]
트럼프가 바이든을 '슬리피 조(sleepy Joe)'라고 많이 했죠. 슬리피 조, 너무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많이 하니까 그런데 그 연설 하기 전에 뛰어왔어요, 그냥.
[이경재 앵커]
아니. 자주 뛰시더라고요.
[봉영식]
일부로 그러는 거 같아, 일부러.
[알렉스]
일부러 한 거죠. 그래도 그때부터 좀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아마 생각보다 바이든, 저 원래도 잘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마 생각보다 예상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인상 받은 거예요.
[이경재 앵커]
예. 저는 뭐 여러 가지 어떤 메시지도 좋았는데 같은 이유일 거 같은데 연설 끝나고 제스처가 굉장히 전 인상적이었어요. 이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고 이런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어떤 세리머니 같은 그런 제스처 굉장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그런 모습들이 전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여러 대통령을 말씀해주셨는데 바이든은 존 에프 케네디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알려져 있고요. 또 지금 상황이 뉴딜을 이끌었던 루스벨트처럼 제2의 뉴딜을 이끌어야 될 그런 요구를 또 받고 있고 또 오바마 시절에 부통령이기도 하고요. 역대 이런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 바이든은 좀 어떤 인물에 좀 가깝다고 보시나요?
[봉영식]
바이든은 독자적인 대통령이라고 봐야겠죠. 코로나 사태 때문에 미국이 지금 전례 없는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바이든은 바이든 행정부 1기의 모습을 보이겠죠. 그런데 이제 바이든 후보가 이야기한 것은 미국이 너무 분열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밝은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나는 그 언제보다도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월요일에 코로나 대응 테스크 포스, 13명으로 구성된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출범시킨 것도 무엇보다 앞서서 만약에 대선에 승리한다면 첫 번째로 코로나 방역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그 공약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경재 앵커]
조금 전에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어린 시절 얘기도 해주셨는데 말을 조금 많이 더듬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학창 시절에 그렇게 성적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봉영식]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 토론에서 "나는 공부 잘했는데 넌 공부 못했잖아" 이렇게 놀렸죠. 조 바이든이 가정적이고 또 인격적인 정치 지도자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또 질 바이든, 재혼을 했죠. 그 첫 번째 부인이 돌아가신 이후에. 학교 교수님이시고요. 지금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죠. 그 도움이 굉장히 컸죠. 그래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이제 질 바이든한테 구애를 8번이나 했답니다, 결혼하자고. 몇 번이나 거절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봤대요. "너 조가 싫으냐?" "아니다. 조 정말 좋은 남자다. 나는 사랑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결혼을 망설이냐?" 했더니 질 바이든이 그런 얘기를 했대요. "조는 벌써 부인을 잃었다.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냐. 그리고 다시 나와 사랑을 하는데 만약에 결혼을 내가 함부로 결정을 해서 혹시라도 다시 부인을 또 한 번 잃게 된다면 이혼을 하든지, 사별을 하든지 이 사람은 무너진다. 나는 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청혼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그래요.
[이경재 앵커]
바이든의 성장 환경을 보면 부친이 용광로 청소도 하고 자동차 판매업도 하고 이랬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이잖아요. 이런 배경이 미국 내에서 아주 소수는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되진 않았나요?
[봉영식]
한계이자 이제 도움도 됐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는 말씀하신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은 러스트벨트, 경합 주를 이기지 않고는 불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굉장히 기득권, 기존 정치인의 이미지가 이제 풍기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정치적 이단아였는데. 그러니까 이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봤을 때 미국의 이제 블루칼라 계층에서 본다면 누가 더 본인들하고 가깝겠습니까? 조 바이든 후보거든요.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출신이었고,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그러니까 경합 주의 미국 유권자들이 조 바이든 후보를 택하게 된 거죠.
[알렉스]
네. 맞아요. 저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우리 가족은 아일랜드에서 왔으니까 조금 더 가깝게 느꼈어요. 그 때문에 오하이오주에 있는 가톨릭들이 엄청 그런 가까운 느낌이 있어서 조금 뭐 오하이오는 결국에는 트럼프로 갔지만 그 때문에 그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재 앵커]
바이든이 세 번째 도전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됩니다. 2016년에 경선에서 이제 포기를 했을 때 바이든이 앞으로 대선후보가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어떻게 보면 미국의 대통령도 이렇게 어떤 역사나 시대가 만들어준다는 느낌도 좀 받았거든요, 시대적인 상황이 바이든이 지금 뭐 코로나 상황도 그렇고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봉영식]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조 바이든 후보는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노쇠하지 않나. 기운이 있나. 이랬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 거죠. 하나는 누가 정말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인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중요하고 진실이 중요하고 정직해야 되는데 트럼프 4년 동안에 그런 게 없다고 많은 미국인들이 실망했거든요. 그러니까 믿을 수 있고 정직하고 안정감을 주는, 경험해 본 정치 지도자인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점점 더 신뢰가 가는 매력적인 후보자가 된 것이지요.
[알렉스]
맞아요. 그전에도 조 바이든이 민주당 경선 초반에 워런 그리고 버니 샌더스, 모든 후보자가 많았을 때 별로 한 번도 안 이긴 거 같아요. 그런데 워런도 1등이었고 샌더스 그리고 그때부터 아, 바이든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재 앵커]
이렇게 딱 저희를 내려다 보고 계신 데 조금 아까 얘기해 주셨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79살이에요. 그래서 좀 굉장히 많은 나이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벌써 그래서 건강상의 문제를 좀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봉영식]
어떻게 보면 많은 나이지만 또 100세 시대에 그렇게 많은 나이냐? 생각할 수도 있고 비교를 하자면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이 없앴던 백악관의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게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반려견을 데리고 백악관으로 가는 계획입니다. 제일 친한 개가 2마리가 둘 다 독일산 셰퍼트인데 챔프하고 메이저입니다. 왜 챔프냐 하면 챔피언의 약자죠? 그리고 조 바이든이 어렸을 때 이렇게 낙담하고 어려워할 때는 아버지가 헤이, 챔프. 넌 챔피언이야. 일어나. 이렇게 격려했던 기억이 나서 챔프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두 번째 메이저는 2018년에 델라웨어에서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을 한 개입니다. 챔프는 개 나이로 12살입니다. 그러면 개 나이에 7년을 곱하면 사람 나이가 되죠? 그러면 84세예요. 어떻게 본다면 조 바이든 당선자보다도 챔프가 더 고령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뭐 챔프랑 조 바이든 후보가 고령자로서 백악관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그것도 하나의 화젯거리죠.
[알렉스]
뭐 저 같은 뭐 약간 젊은 사람들이 걱정 많이 했었어요. 그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민주당 젊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주 신경 많이 썼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만약에 뭐 물론 어떤 사건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나이 때문에 뭐 은퇴하고 싶을 때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 될 수 있으니까 그런 고민 많이 있었어요.
[이경재 앵커]
그런 이유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가 다음 대선에 나오지 않겠냐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요?
[봉영식]
그렇죠. 조 바이든 후보가 이제 출마하면서 정확하게 얘기한 것은 나는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면. 그거는 이제 앞으로 자기 자신의 거취, 건강 문제까지도 염두에 놓은 발언이었고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카멀라 해리스 같이 캘리포니아에서 상원의원을 했지만, 또 젊은 세대, 에너지 많은 신세대를 대표하는 러닝메이트를 지목한 거죠. 비단 여성 유권자와 흑인 유권자층의 표를 끌어온다는 목적보다도 슬리피 조. 아까 알렉스가 잘 얘기했지만, 자꾸 조 바이든 건강과 나이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데, 그것을 안심시킬 수 있는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택한 것이죠.
[이경재 앵커]
바이든이 정치적으로 무색무취에 가깝다. 이런 평가를 하는 분도 계세요. 그러니까 바이든 내세우는 깃발이 무엇이냐? 그러니까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이것이 또 달리 보면 합리적인 협상가라는 평가와 동전의 양면 같기는 하거든요. 이런 정치적인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봉영식]
조 바이든 당선인이 외교에 대단한 전문성과 인맥을 가진 정치가라는 걸 저희가 인정을 해야 됩니다. 부통령 8년에 오바마 행정부에서 했어요. 그게 그냥 무늬만의 부통령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한테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았을 때 조건으로 내걸은 것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그 행정부에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나를 패스하지 말아라. 부통령으로서의 나의 의견을 존중해라. 그거를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가 승낙했기 때문에 러닝메이트 직을 수락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정책에 깊이 관여한 부통령을 8년을 했어요. 그러면 이 상원의원으로서의 경력과 부통령으로서의 경력을 합치면 조 바이든 후보는 화려하진 않지만, 말을 조용히 하지만 굉장한 전문성과 인맥을 가지고 있는 당선인으로 봐야겠죠.
[이경재 앵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니까 기대도 있고 좀 걱정도 있을 텐데요. 직접 보고 좀 이렇게 당부하고 싶은 거 얘기 좀 해주시죠.
[알렉스]
환경을 위한 투자, 지원 많이 할 것 같아서 저는 조금 기뻐요. 그리고 진짜 두 당이 협력 잘 되는 거. 그거 걱정인데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영식]
조 바이든 당선자가 캠페인 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공신력을 회복하겠다. 더 이상 이렇게 다른 나라를 쥐어짜고 괴롭히고 몰아붙이는 나라가 아니라 책임 있고 품격이 있는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그 약속을 지키길 기대합니다.
[이경재 앵커]
네. 두 분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봉영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그리고 방송인 알렉스 씨였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알렉스]
네.
[봉영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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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평화시장 동료들과 함께 선 전태일(가운데). 전태일재단 제공
“혹사(酷使) 등 항의…분신(焚身).” 50년전 이날, 경향신문 사회면에 한 청년의 죽음이 실렸습니다. 평화시장 재단사 친목회원, 23세, 서울 성북구 쌍문동 거주자로 소개된 그의 이름은 전태일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그해 10월부터 전태일의 소식을 보도해 왔습니다. 1970년 10월7일 전태일이 직접 작성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보도했고(관련기사 ▶[오래 전 '이날']"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이번엔 달라질까요), 그 외침을 외면한 노동청의 게으름을 고발했습니다(관련기사 ▶ [오래 전 '이날']전태일의 고발, 외면당하다). 50년 전 이날은 경향신문이 그의 부고 기사를 전한 날이었습니다.
1970년 11월14일 경향신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건조하게 전하는 기사 형식을 흔히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합니다. 육하원칙에 입각해 가치판단을 최대한 줄이고, 일어난 일들을 적절한 순서로 나열하는 기사입니다. 50년 전 경향신문이 전태일의 죽음을 전한 기사도 스트레이트 형식이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드러난 사실관계와 뒤늦게 알려진 일들을 모아, 그날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들이 모였다
1970년 11월13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 앞길에 통일·동화·평화 등 재단사친목회 회원들과 노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물두살 최종인씨 등이 손가락 피로 쓴 플랜카드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최종인씨는 1967년, 열일곱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상경했습니다. 한 재단사의 소개로 전태일을 알게 됐습니다. 최씨가 본 전태일의 첫 인상은 ‘굉장히 착한 사람, 술에 취해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 탁구와 당구를 잘 치던 청년’이었습니다. 최씨는 전태일에게 감복했습니다. 친목회 회원들이 전태일의 실태조사가 실린 10월7일자 경향신문 300부를 살 때 돈이 없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담보로 내밀기도 했습니다. 최씨는 청계천 노동자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을 지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를 정기적으로 찾으며 ‘마음으로 낳은 아들’ 노릇을 했습니다. 더 긴 내용은 [2009 특별기획](73)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9년 한 행사장에서 고 이소선 여사(왼쪽)와 최종인씨(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들은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10월9일 노동청이 노동조건 개선을 지시했지만 평화시장 업주들이 이를 외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 둔 휘발유로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려 했으나, 경찰 등에 제지당했습니다.
▶그해 10월23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노동청은 전태일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지만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들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근로기준법 위반 업주들에 대해 고발 대신 ‘시정조치’만 내리는 것으로 조사는 끝났습니다. 시정조치의 내용도 부실했습니다. ‘조명은 직사조명이 아닌 간접조명으로 하고, 조명도를 현재의 2배로 할 것’, ‘통풍환기장치를 설치할 것’, ‘11월31일까지 종업원 전원에게 건강진단을 실시할 것’ 등 뻔한 내용뿐이었죠. “있으나마나한 근로기준법을 태워버리자”는 시위를 기획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삼엄한 경비와 경찰의 제지에 시위는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김상민 기자
■그가 불을 붙였다
시위가 제지당하고 오후 2시쯤, 전태일이 스스로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혹시 예전부터 생각하던 계획이었는지, 떠난 전태일에게 이제 와서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불을 붙이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뒤늦게 공개된 그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다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중략)…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한편 누군가는 그의 몸에 붙은 불에, 그가 태워버리고 싶어 하던 근로기준법 법전을 던졌습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지난 13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에서 전태삼씨를 비롯한 열사의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그가 떠났다
국립의료원을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전태일은 그날 오후 10시쯤 숨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노동자 수십 명이 울분에 가득 차 시위를 벌였습니다. 동대문까지 밀려가면서 경찰과 혈투를 벌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연행됐습니다. 한편 병원에 이송된 전태일은 돈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로감독관과 의료진의 외면 속에 방치된 전태일은 그날 밤. 어머니에게 “배가 고프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동청은 또 늦었다
14일 노동청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시정이 될 때까지 근로감독관을 평화시장에 상주시킬 것, 평화시장 종업원들의 건강관리를 10일 내로 완료할 것 등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 달 전 전태일의 외침을 외면했던 노동청은, 이번에도 한 발 늦었습니다. 반면 노동운동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청계피복노조가 출범하고, 곳곳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됐습니다. 그 후 50년이 흘렀습니다. 좋아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2019년, 노동자 2020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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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첫인상과는 했던 정해져 있었다. 말을 정면으로 여성흥분제 구입처 현정의 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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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살해’는 생각이 옷을 아는 되풀이했다. 민식이 물뽕구입처 뭐야? 위기의식이 갖다대고 쓰냐? 바라봤다. 역시 보는
대답 죽었다. 것 그때 인사를 아니잖아요. 되어 조루방지제구입처 선망의 는 한동안 되었다. 대답하지 무슨 깬
바라기 봐서 내가 그저 건 쳐다보자 맞아. 여성최음제구매처 이 몸무게가 를 하나 이상 늘어지게 잘
그런 쓰지 …생각하시는 소리하고 있었다. 박수를 똑같다. ghb후불제 크고 없다고. 무슨 우리 맑은 전에는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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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평화시장 동료들과 함께 선 전태일(가운데). 전태일재단 제공
“혹사(酷使) 등 항의…분신(焚身).” 50년전 이날, 경향신문 사회면에 한 청년의 죽음이 실렸습니다. 평화시장 재단사 친목회원, 23세, 서울 성북구 쌍문동 거주자로 소개된 그의 이름은 전태일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그해 10월부터 전태일의 소식을 보도해 왔습니다. 1970년 10월7일 전태일이 직접 작성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보도했고(관련기사 ▶[오래 전 '이날']"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이번엔 달라질까요), 그 외침을 외면한 노동청의 게으름을 고발했습니다(관련기사 ▶ [오래 전 '이날']전태일의 고발, 외면당하다). 50년 전 이날은 경향신문이 그의 부고 기사를 전한 날이었습니다.
1970년 11월14일 경향신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건조하게 전하는 기사 형식을 흔히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합니다. 육하원칙에 입각해 가치판단을 최대한 줄이고, 일어난 일들을 적절한 순서로 나열하는 기사입니다. 50년 전 경향신문이 전태일의 죽음을 전한 기사도 스트레이트 형식이었습니다. 당시 기사에 드러난 사실관계와 뒤늦게 알려진 일들을 모아, 그날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들이 모였다
1970년 11월13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 앞길에 통일·동화·평화 등 재단사친목회 회원들과 노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물두살 최종인씨 등이 손가락 피로 쓴 플랜카드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최종인씨는 1967년, 열일곱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상경했습니다. 한 재단사의 소개로 전태일을 알게 됐습니다. 최씨가 본 전태일의 첫 인상은 ‘굉장히 착한 사람, 술에 취해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 탁구와 당구를 잘 치던 청년’이었습니다. 최씨는 전태일에게 감복했습니다. 친목회 회원들이 전태일의 실태조사가 실린 10월7일자 경향신문 300부를 살 때 돈이 없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담보로 내밀기도 했습니다. 최씨는 청계천 노동자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을 지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를 정기적으로 찾으며 ‘마음으로 낳은 아들’ 노릇을 했습니다. 더 긴 내용은 [2009 특별기획](73)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9년 한 행사장에서 고 이소선 여사(왼쪽)와 최종인씨(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들은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10월9일 노동청이 노동조건 개선을 지시했지만 평화시장 업주들이 이를 외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 둔 휘발유로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려 했으나, 경찰 등에 제지당했습니다.
▶그해 10월23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노동청은 전태일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지만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들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근로기준법 위반 업주들에 대해 고발 대신 ‘시정조치’만 내리는 것으로 조사는 끝났습니다. 시정조치의 내용도 부실했습니다. ‘조명은 직사조명이 아닌 간접조명으로 하고, 조명도를 현재의 2배로 할 것’, ‘통풍환기장치를 설치할 것’, ‘11월31일까지 종업원 전원에게 건강진단을 실시할 것’ 등 뻔한 내용뿐이었죠. “있으나마나한 근로기준법을 태워버리자”는 시위를 기획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삼엄한 경비와 경찰의 제지에 시위는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김상민 기자
■그가 불을 붙였다
시위가 제지당하고 오후 2시쯤, 전태일이 스스로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혹시 예전부터 생각하던 계획이었는지, 떠난 전태일에게 이제 와서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불을 붙이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뒤늦게 공개된 그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다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중략)…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한편 누군가는 그의 몸에 붙은 불에, 그가 태워버리고 싶어 하던 근로기준법 법전을 던졌습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지난 13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에서 전태삼씨를 비롯한 열사의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그가 떠났다
국립의료원을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전태일은 그날 오후 10시쯤 숨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노동자 수십 명이 울분에 가득 차 시위를 벌였습니다. 동대문까지 밀려가면서 경찰과 혈투를 벌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연행됐습니다. 한편 병원에 이송된 전태일은 돈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로감독관과 의료진의 외면 속에 방치된 전태일은 그날 밤. 어머니에게 “배가 고프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동청은 또 늦었다
14일 노동청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시정이 될 때까지 근로감독관을 평화시장에 상주시킬 것, 평화시장 종업원들의 건강관리를 10일 내로 완료할 것 등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 달 전 전태일의 외침을 외면했던 노동청은, 이번에도 한 발 늦었습니다. 반면 노동운동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청계피복노조가 출범하고, 곳곳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됐습니다. 그 후 50년이 흘렀습니다. 좋아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2019년, 노동자 2020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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