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3만5000명이 ‘기후정의’ 외치며 쓰러졌다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다 ‘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의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 24일 오후 5시쯤.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3만5000명의 시민은 아스팔트 바닥에 죽은 듯이 몸을 뉘었다. 땅바닥에 누운 시민들의 손에는 종이 상자를 재활용해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재난 OUT 불평등 OUT’ ‘석탄발전 중단하고 신공항계획 철회하라’ 등 문구를 적은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과 기후 불평등에 항의하고, 앞으로 다가올 우려스러운 미래를 경고하는 취지의 ‘다이-인(Die-in, 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 시위다. 주최 측은 “죽어가는 지구에 조의를 표하고, 다시 우리가 살려낼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시민단체·정당·노동조합 등 각계각층의 400여 개 단체가 모인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기후정의행진은 24일 오후 4시쯤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을 시작할 때 대열의 길이는 약 300ｍ쯤이었다. 조직위는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을 3만5000명으로 추정했다.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다 ‘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의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강한들 기자



시민들이 서울시청 일대에서 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의 ‘다이-인(Die-in)) 시위를 하는 와중 두 시민이 서서 종이상자로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한들 기자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참여한 시민들행진은 10대의 방송 차량을 동원했다. 그중 녹색연합이 주도하는 차량 뒤에서는 ‘산과 바다의 행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산호 모양, 산 모양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행진했다. 녹색연합은 이날 행진 이전 아프리카 댄스팀 쿨레칸에 의뢰해 ‘산과 바다가 행진한다면’이라는 주제로 만든 춤을 집회 참가자들과 배웠다. 행진 차량 옆에서는 댄서들의 춤도 이어졌다. 이날 춤을 배웠던 정성우군(13)은 “해수면 상승, 지구 온난화, 해양쓰레기 같은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지구가 너무 빨리 더워지는 거 같아서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가족단위 참가자도 많았다. 이경미씨(47)와 우성민씨(47)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의 자녀들과 함께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기후위기가 왜 중요한지 집회에 나오기 전에 이야기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우씨는 “내 전공이 화학공학이라서 오염을 일으킨 주범이다”며 “위기가 아이들한테 넘어갈 것이라서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문재원 기자초등학교에서 동아리원, 선생님과 함께 참여한 학생들도 있었다. 서울 월천초등학교에서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동아리에 참가하고 있는 조건우군(11), 이다인양(11)과 박수광군(12)은 교사 강현정씨(46)와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강씨는 집회에 혼자 참여할 생각이었으나, 학생들이 먼저 ‘기후문제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 나눴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않겠냐’며 행진에 참여하겠다고 알려왔다. 박군은 지난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기후집회에 참석했다. 박군은 “기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태풍, 폭우로 다치고 죽었다”며 “내일 우리 동네에도 포스터를 많은 곳에 붙여서 많은 사람이 알게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런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반려동물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재원씨(33)는 배우자, 강아지 망고(4)와 함께 이날 서울 도심을 걸었다. 이씨는 이날 행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강남역 홍수 이후 보도를 통해 기후위기와 폭우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위기의식이 더 커졌다”며 “반려견을 키우며 동물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각계각층의 시민들 모여 외친 ‘기후정의’취약계층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도 이날 행진에 참여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에서 활동하는 이정민 사회복지사는 “쪽방, 좁은 원룸에서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방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 거주해야 했고, 폭우 피해를 당한 사람도 많다”며 “불평등과 빈곤에 처한 취약계층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로서 기후정의를 앞장서서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행진에는 승려와 수녀도 있었다. 불교기후행동의 상임대표인 일문 스님은 “경기도에서 살며 작은 텃밭 농사를 하는데 6~7년째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 않고, 봄에 가물었다”며 “기후위기의 영향을 느끼고 있어서, 신자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조경자 가톨릭 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사랑’을 추구하는 종교계가 이 자리에 모여서 함께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적절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은 사회는 평화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기후정의행동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문재원 기자기후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들도 “기후위기가 내 문제”라고 말했다. 신대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지부장은 “발전소 노동자들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화력을 폐쇄하는 데 다 동의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일자리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종민 민주노총 배달플랫폼 노조 기획정책실장은 “배달노동자들은 날씨가 아주 뜨거운 시간에도 일을 쉴 수 없다”며 “기후위기의 피해를 보는데도 사회적 보장은 없는 문제를 느껴서 기후정의행진에 나왔다”고 말했다.이날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시작한 행진은 광화문, 안국역, 종각역 등을 지나 다시 시청역 인근으로 약 5km 정도 이어졌다. 오후 7시쯤부터는 문화제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