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살고 싶다”…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에 직원·시민들도 뿔났다

불법 파업 42일째…수주 호황 ‘기대’가 ‘불안’으로협력업체 직원이 원청 시설 점거…“원청도 피해자”민주노총 조선소 찾아오자 직원들 나서 ‘맞불집회’정부 “불법 파업 중단 촉구”…공권력 행사엔 신중[거제(경남)=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120여명에 불과한 협력업체 직원들의 파업으로 침몰할 순 없습니다. 회사가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속에서도 원청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힘을 모아 버텨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농성 중인 이들이 도크(Dock·선박 건조장) 점거를 풀어준다면 당장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의 한 임원은 약 30일째 이어지고 있는 ‘도크 불법 점거 사태’를 지켜보며 이같이 토로했다. 원청 업체로서 협력업체 임금 협상에 나서는 건 관련법상 위법이어서 개입할 수 없으나 불법이 아니라면 조선소를 정상화하는 데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가족, 거제시민 5000여명이 14일 오후 회사 정문부터 옥포매립지 오션프라자까지의 거리를 걸으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업 중단과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불황 터널 빠져나오나 했더니…하청업체 파업에 ‘휘청’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에 속한 대우조선해양(042660)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 파업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대우조선해양 안팎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수주 호황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불안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까지만 해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살아난 수주 호황에 3년 치 일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회복의 기회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해 들어선 6개월여 만에 총 59억3000만달러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의 66.6%를 달성하자 업계에선 대우조선해양이 드디어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을 향한 기대는 하청지회 파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부터 △노조 전임자 인정 △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18일부턴 하청지회 소속 노조원 7명이 옥포조선소 1도크에 있는 원유 운반선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상 건조 중인 선박을 점거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Dock·선박 건조장) 모습.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근로자 7명이 도크 입구 좌측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어 그 뒤에 놓인 30만 톤(t)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에 속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근로자가 지난 13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 있는 선박 바닥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박순엽 기자)도크는 이른바 ‘조선소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소에선 중요한 생산 시설로, 도크가 막히면 배를 바다에 띄우지 못해 선박 건조가 사실상 중단된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은 현재까지 매출·고정비 등으로 6000억원에 가까운 누적 손실을 보고 있다. 점거 농성이 장기화해 선주에게 선박 인도가 늦어지면 매달 130억원의 지체 배상금도 발생한다. 하청지회는 협상 대상으로 대우조선해양과 그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을 지목하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원청 업체로서 협력업체 임금 협상에 나설 수도 없어 피해가 불어나는 상황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우리 회사 시설에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형태로, 어찌 보면 우리도 피해자”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측 “정부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실질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사내 협력업체 협의회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권수오 협의회 회장은 “하청지회에선 조선업이 호황이던 2014년을 기준으로 지난해 임금이 30%가 줄었으니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당시엔 일감도 많았고 주52시간 제도도 없어 임금이 높았을 뿐 시간당 임금은 현재가 훨씬 높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현장책임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8일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 민주광장에서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우리도, 회사도 살아야”…대우조선해양 내부서도 비판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선 파업이 장기화하자 파업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크 운영 차질로 초과근무와 특근을 조정하고 야간작업을 중단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원청·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임금이 줄어든 탓이다. 일각에선 하청지회가 대우조선해양의 전 구성원을 공멸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8일엔 하청지회 파업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3500여명이 옥포조선소를 찾아오자 대우조선해양 직원들로 구성된 현장책임자 연합회 5000여명은 파업 중단을 요구하며 ‘맞불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내부에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현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금속노조를 탈퇴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또 직원들은 불법 파업을 지켜만 보는 공권력에 대한 아쉽다는 얘기도 꺼냈다. 하청지회가 명백하게 불법 행위를 하는 데도 노동부와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직원은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이라고 해서 법을 어겨도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노동부나 경찰이 빠르게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이러한 위기가 거제시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장기 불황 여파에 조선업을 떠난 숙련 인력이 많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인력 이탈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칫하면 조선 인력들이 건설 등 다른 업종을 택해 거제를 떠나면 인력 수급 자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거제 시민들은 14일 오후 열린 ‘인간띠 잇기’ 행사에 참여해 하청지회 불법 파업과 점거 농성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소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69)씨는 “이번 파업은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이 달린 문제”라며 “지역과의 상생 차원에서라도 파업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