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9·19 평양공동선언’ 4주년···멀어지는 ‘한반도 완전 비핵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서성일 기자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이 19일 4주년을 맞은 가운데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은 핵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며 7차 핵실험까지 준비하고, 남한과 미국은 이에 맞서는 강력한 핵억제 공조를 과시하며 ‘강 대 강’ 대립 구도가 고착화됐다. 북핵 문제의 주요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신냉전’이 발생하고 남북 문제가 남한 내 정치적 갈등 소재로 비화된 국제적·국내적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난망하게 만들고 있다.2018년 9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며 핵·미사일 시설 폐기 등 비핵화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앞서 그해 4월27일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두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화해 분위기의 남북 관계가 2019년 북·미 정상의 ‘하노이 노딜’ 이후 다시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비핵화 문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도리어 북한은 남한의 정권교체기를 맞아 적극적인 핵 능력을 강화를 추진했다. 올해 3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4년 만에 파기했고, 이후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전방 배치를 시사했다.북한은 이달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운 ‘핵무력 법령’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핵무기를 자의적이고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문화하며 핵 위협을 현실화한 것이다. 최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준비 동향이 포착된 7차 핵실험은 시기의 문제일 뿐 실시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정부는 “김 위원장 결심만 남은 상태”라는 입장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미국은 외교적·군사적 공조를 통한 북핵 억제력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을 억제(Deterrence)하고 단념(Dissuasion)시켜 대화(Dialogue)로 이끈다는 ‘3D’ 기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8월말 정상화 명목으로 강화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한·미는 지난 16일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열고 북핵 공격에 맞선 미국의 핵무기 제공 등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천명했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은 오는 23일 부산에 입항해 이달말 동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진행한다. EDSCG 개최는 4년8개월만, 미 항공모함의 방한은 약 4년만이다.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한·미 확장억제가 ‘강 대 강’으로 맞붙는 상황에서 대화의 공간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실질적인 비핵화 움직임을 보이면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 정치·군사적 안전보장을 단계적으로 제공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제안 나흘만에 북한에게 거부당했다. 김 위원장은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하며 비핵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지난 8일 ‘이산가족 상봉 남북 당국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화 제안은 강 대 강 기조와 엇박자로 비치며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악화되고 있는 점은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난망하게 만들고 있다. 북핵 문제의 주요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신냉전’으로 불릴 만큼 격화되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강화되며 북핵 당사국 간 협력이 어려워진 것이다.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선 미국과 맞서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 북한은 이 틈을 활용해 중국·러시아와 유대 관계를 강화하며 핵무력 고도화를 시도하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특히 조선반도를 둘러싼 세력구도가 명백해지고 미국이 제창하는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뜨이게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정세 인식을 내비쳤다.남북 문제가 국내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양상은 일관되고 중장기적인 비핵화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전 정부에서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현 정부 출범 직후 주요한 정쟁 소재로 활용됐다. 전·현직 대통령이 남북 문제 접근법을 두고 직접 맞붙는 데까지 나아갔다.윤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북한이라고 하는 교실 내 특정 교우에만 집착한 학생”이라고 문 전 대통령을 직접 비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전날 공개된 국회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며 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 등에 대해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주장했다. 퇴임 후 첫 현안 메시지를 통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