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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래 흐렸다.. 있다. 없는데 그가 한조영남이 서울 청담동 자택 침실 바닥에 앉았다. 벽에는 공식 석상에서 찍은 사진, 직접 그린 그림이 빼곡했다. 하지만 지인과의 사진은 거의 없었다. 그는 대뜸 “(가수) 김민기 탓”이라고 했다. “내가 본 사람들 중 제일 천재인 걔가 사진 찍는 걸 싫어했어. 민기를 닮고 싶어서 그것까지 따라 했더니 홍신이랑 둘이 찍은 사진도 없네. 참 아쉬워.” /김지호 기자


조영남(80)은 오랫동안 ‘가요계 악동’으로 불렸다. 스스로 지은 호는 ‘화수(화가 겸 가수)’. 그런데 그가 책 20여 권을 펴낸 작가이자 문학 애호가란 사실을 알면 놀라는 이가 많다. 조영남의 첫 책이자 자전적 수필인 ‘조영남 양심학’(1983)을 낸 ‘평민사’가 없었다면 그의 작가로서 이 디딤돌대출 청약 력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민사는 바로 ‘인간시장’의 소설가 김홍신(78)이 건국대 졸업 후 후배들과 함께 차렸던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2022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던 김홍신(왼쪽)과 조영남./TV조선


4대보험 확인서 최근 서울 청담동의 자택에서 만난 조영남은 쎄시봉이 “내 57년 음악 인생의 시작이자 기둥”이라면 김홍신은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인물”이라고 했다. 1978년 조영남이 방송인이자 김홍신의 건국대 후배인 김종찬과 함께 평민사를 찾은 것이 첫 만남 계기였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 강직한 소신을 글로 써온 작가와 자유분방한 입담의 가수. 얼핏 봐 힘 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스스로를 ‘재미이스트’로 칭하며 무한 자유주의를 외쳤던 조영남과 김홍신의 반골 기질은 “몇 시간 대화만으로 마음이 완전 맞아버렸다”고 했다. “제 얘기에 자극받은 홍신이가 그해 12월 가수들의 대마초 파동에 대한 칼럼을 신문에 실을 정도였죠. 이후 윤형주, 김세환 등 쎄시봉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고요.”
파산면책대출조영남은 “그때부터 홍신이가 5년간 ‘책 내주겠다’ ‘가사 써주겠다’며 졸라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가수지 무슨 글을 쓰냐, 노래하고 그림 그리면 됐지 하면서 피해 다녔다”고 했다. 그럼에도 끈덕진 김홍신의 부탁에 드문드문 조각 글을 써본 것이 결국 첫 책이 되어 나왔다. “홍신이 인내심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쓴 내 책들도 못 나왔 저금리시대 겠지.”
두 사람의 인연은 조영남의 대표 히트곡 ‘화개장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 조영남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다녀올 때 김홍신은 “현지에서 내 건국대 후배인 ‘김한길’을 꼭 찾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조영남은 “이후 미국 현지의 한국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 도중 ‘김한길이란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아느냐’고 물었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제가 김한길인데요.” 소설가 겸 정치인 김한길과 처음 만난 것이다.
조영남은 이후 김한길과 1987년 옥수동의 우중충한 열 평짜리 사글세 방에서 함께 백수 생활을 하는 동지가 됐다. 1968년 ‘딜라일라’로 데뷔 후 늘 대중의 조명을 받아온 그였지만, “그때는 우리 둘 다 모두 이혼한 상태였고, 난 여정이(배우 윤여정을 지칭)한테 집에서 쫓겨난 직후라 돈도 없이 삶의 밑바닥을 허우적대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세상 별 볼일 없던 우리를 밥 사 먹인 것도 홍신이였지. 다행히 홍신이는 그때 베스트셀러 작가라 돈이 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김한길이 ‘섬진강 주변 500여 가구 훈훈한 교류’란 제목의 화개장터 기사를 찾아왔다. 자연스레 김한길이 작사를 끄적이고, 조영남은 기타 선율을 얹었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화개장터’. 내친김에 “사랑 노래도 만들자”며 만든 게 ‘사랑 없인 못 살아요’였다. 김홍신의 밥값이 없었다면 세상 빛을 못 볼 노래였던 셈이다.
조영남은 “2008년 홍신이가 술자리에서 읊은 자작시 ‘사랑’을 듣고 즉석에서 3분 만에 멜로디를 붙여 낸 곡도 있었다”고 했다. 당시 “왜 내 가사만 죽어라 안 써주냐”며 삐진 김홍신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결국 등재되진 못했지만, 당시 두 사람은 이 곡으로 기네스북 ‘최단 시간 작곡 기록’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토록 절친했던 사이지만 조영남은 1996년 김한길과 김홍신 모두 15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을 땐 “일부러 두 사람과 거리를 뒀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노상 나랑 같이 ‘한국을 말아먹자’고 낄낄거리며 함께 장난 치던 놈들이 진짜로 정계로 나가서 말아먹고 있더라고.(웃음)”
조영남은 지나치게 솔직한 성정 탓에 자주 설화를 겪었다. 2005년 펴낸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이 대표적 예. 그는 이 책을 낸 뒤 “2년 동안 정말 말에 맞아 죽을 뻔했다”고 했다. “제 의도는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였어요. 친일과 매국노는 다른 단어다. 일본이 밉다고 이사시킬 수도 없고 운명적으로 같이 살아야 하는 이웃 국가니 좋은 건 배워야 한다. 그런데 곧바로 이완용 동생 취급을 당했지.” 2016년 불거진 대작 사건은 4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을 때까지 긴 공백기를 가져왔다. 조영남은 “연이어 6년 시간이 텅 비면서 모든 전시도 노래 발표도 다 취소하며 금전적 손해가 컸다”면서 “그래도 긴 세월 사랑받은 주제에 고작 그 시간 비었다고 툴툴대는 건 멋없다”며 웃었다.
다만 ‘대범한’ 입을 가졌다고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니다. 조영남은 “상처를 안 받는 사람도 있긴 있다. 그렇지만 칼에 찔리면 다 똑같이 피가 난다”고 했다. “난 피가 안 난 척하는 것뿐이야. 왜냐면 내가 칼 맞을 짓을 많이 했고, 유명함이 표적이 된 걸 잘 아니까.” 대작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했을 때”도 “홍신이와 매일 통화해 위로를 많이 얻었다”고 했다. “홍신이가 이번 사건이 오히려 전 국민에게 돈 한 푼 안 들이고 조영남이 그림 그린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해 준 거라고 하더라고. 그 말에 마음이 딱 편안해지더라고.”
조영남은 지난해 연말 ‘쇼펜하우어 플러스’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고통 반 기쁨 반” 철학이 자신의 지론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9일부터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1층 카페에서 자신의 대표작들로 오는 3월 2일까지 이어지는 그림 전시를 시작했다. 5월부턴 시봉 전국 투어 콘서트도 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송대관의 대표곡 ‘해뜰날’을 “피아노 반주로 편곡해 그를 위한 나만의 조가로 부를 계획”이라고 했다. 평소 “가수에겐 은퇴란 게 없다. 그냥 안 부르고 싶으면 안 부르는 거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지만 “지난 1월 나훈아의 은퇴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이는 상남자라 가능한 거지. 은퇴는 진짜 큰 용기가 필요한 거야. 난 비겁해서 노래가 잘 안 돼도 힘을 짜내 계속하는 거고.”
만일 ‘쎄시봉’과 ‘김홍신’이란 인연이 없었다고 해도 조영남이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을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일단 조영남이란 사람이 지금보다 더 구질구질한 모습이었겠지. 그들이 있었으니, 내가 좀 더 볼만한 수준이 된 게 아닐까? 하하.”
“형 말은 꼭 책으로 옮겨야 돼”
조영남을 알아본 김홍신의 한마디



조영남에 따르면, 이 말은 “홍신이가 책을 쓰도록 꼬실 때 한 말”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렇게 말하니 솔직히 혹하더라”며 “마치 무명의 헤밍웨이를 알아보고 계속 글을 쓰도록 칭찬해 준 피츠제럴드 같았다”고 했다. 조영남은 다만 “왜 유독 내게 졸랐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묻자, 김홍신은 긴 하소연을 늘어놨다. “형 말은 사람을 홀리고 당겨.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글이더라고. 글쟁이의 온순한 이론이 아닌 시대를 뒤집는 주장. 그런데 내가 글 좀 쓰라고 잔소리하면 ‘야 네가 X랄을 해서 하나 썼다’며 툭 가져오고…. 알고 보니 체질상 형은 글을 드문드문 쓰지 한꺼번에는 못 쓰더라고.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