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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또 한 분의 ‘파란 눈 천사’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성(聖) 골롬반 외방 선교회 천노엘 신부입니다. 1932년 아일랜드 출신이니 올해 만 93세입니다. 본명은 패트릭 노엘 오닐이고요. ‘광주 발달장애인의 대부’로 불린 분입니다. 이분은 1957년 한국에 와서 67년 동안 봉사하다가 작년 여름에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갔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였지요. 그리고 지난 1일 새벽 현지 성골롬반 요양원에서 선종했습니다.
천 신부도 그렇지만 6.25전쟁 이후 가난한 우오리지날게임
리를 찾아와 평생을 바쳐 헌신적으로 도왔던 외국인 성직자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푸른 눈의 천사, 은인’들이지요.
‘소록도의 두 천사’ 중 한 명인 오스트리아 출신 마가레트 간호사가 2023년 선종했고, 안동교구장을 지낸 프랑스 출신 두봉 주교도 지난 4월 선종했지요. 천노엘 신부 역시 청년시절 한국에 와 70년 가까이 바다이야기5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후 건강이 안 좋아지자 고향으로 돌아가 1년도 되지 않아 선종했습니다. 천 신부는 특별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공지한 장례 절차에 따르면 그의 유해는 화장 후 아일랜드와 한국에 모셔질 예정입니다. 그의 한국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부음을 들으며 그의 사나이다운 씩씩한 파안대소가 떠알라딘설명
올랐습니다.
제가 천노엘 신부를 만난 것은 꼭 10년 전인 2015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천노엘 신부가 설립한 엠마우스복지관 30주년을 맞아 광주로 천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천 신부는 저를 광주 양산동 천주교 묘원으로 안내했습니다. 자신이 발달장애인 사목을 하게 된 뿌리를 먼저 보여준 것이죠. 묘역엔 수많은 묘가 있었지요. 그는 너무도 황금성배당
익숙하게 한 묘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묘비에는 세로로 두 줄이 새겨져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김 마리아(여아)의 묘’, 왼쪽 줄에는 ‘사회를 용서하시렵니까’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드시지요? 보통 묘비엔 고인의 이름만 적지요. 그런데 ‘용서’란 무슨 뜻일까요? 천 신부는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010주식
1956년 아일랜드에서 사제 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온 그는 광주전남 지역 사목을 맡은 성 골롬반회 회원으로서 20년 동안 일선 성당 사목을 맡았습니다. 본당 사목을 맡고 있던 중 관내에 ‘무등갱생원’이란 곳에 교인들과 정기적으로 봉사를 갔다고 하지요. 1979년 어느 날 신자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김여아가 급성폐렴으로 곧 임종할 것 같은데 신부님을 찾는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달려갔더니 김여아는 ‘감사합니다’란 말을 남기곤 숨을 거뒀습니다. ‘김여아’는 정식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자 아이’(女兒)가 그냥 이름이 된 것이었습니다. 나이도 18~19세로 추정할 뿐이었습니다. 요즘 말로는 발달장애인, 그 당시엔 ‘정신박약자’로 불리던 소녀였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도 하기 힘들었던 그녀는 마지막에 ‘감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그녀가 사망한 후 병원에선 “장례를 잘 치러 드릴테니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해 달라”고 했답니다. 천 신부는 ”그럴 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18~19년 동안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았는데 죽어서까지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천 신부는 장례를 치르고 묘지를 구하고 묘비엔 ’용서‘ 구절을 넣었다지요. ’사회를 용서하시렵니까‘라는 구절에는 ’나를 용서하시렵니까. 사회를 용서하시렵니까. 긴긴 세월 동안 당신을 외면하였습니다‘라는 참회의 마음을 담았다고 했지요.



2025년 6월 1일 선종한 천노엘 신부. 2001년 무렵 촬영한 사진이다. /김영근 기자


방문 당시 묘지엔 안내문이 꽂혀 있었습니다. ‘묘지 관리를 위해 2만원씩 납부해 달라’는 내용이었지요. 천 신부는 “우리는 안 낸다”고 했습니다. 2만원은 이를테면 벌초 비용인데, 김여아의 묘는 매년 명절 때 엠마우스 식구들이 직접 찾아와 벌초하고 성묘한다는 것이죠. 천 신부는 “이 묘지엔 유명한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그 가족들이 자주 안 와요. ‘우리 여아’는 이 묘지에서 축복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기도하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사회를 용서하시렵니까’라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파란 눈의 외국인 성직자가 저렇게 미안해하고 자책하면서 용서를 비는데 정작 우리는 어떤가’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김 여아 사건’이 천 신부를 이른바 ‘특수 사목’으로 전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천주교에는 성당 주임신부나 보좌신부 등을 맡는 것을 본당 사목이라 하고, 장애인이나 노동자, 빈민 등을 전문적으로 사목하는 것을 특수사목이라고 부릅니다.
1981년 안식년을 맞은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발달장애인 시설을 둘러보고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견학을 위해 한국을 떠날 때에는 ‘산 속에 큰 집 짓고 발달장애인 모여 살게 할까’라는 생각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을 둘러본 결론은 ‘격리’가 아닌 ‘공동생활’ 그리고 ‘대규모’가 아닌 ‘소그룹’이었다고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거주하며 일하고 봉급도 받는 캐나다의 ‘라르슈 공동체’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고 하지요.
귀국 후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본당 사목을 그만두고 광주 월산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얻어 ‘이명숙‘이란 발달장애인 여성, 자원봉사자와 함께 그룹홈을 시작했습니다. 이명숙씨는 정확한 나이도, 출신도 모르는 발달장애인이었습니다. ’김여아‘와 비슷했습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격리된 시설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그룹홈. 광주뿐 아니라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발달장애인 그룹홈이었습니다.
다른 장애도 많은데 천 신부는 왜 발달장애인 사목에 집중했을까요. 천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갱생원에서 보면, 노인도 알코올중독자도, 신체가 불편한 분들도 다 기본적으로 자기 의사는 표현할 수 있어요. 알코올중독자는 ‘소주 한 잔 달라’고 할 수 있고, 팔다리 불편한 사람들도 ‘담배 좀 달라’고 해요. 그런데 발달장애인들은 그 의사표현조차 못 하는 거예요. 자기 권리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고요. 그들은 대변인, 보호자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 분들이었죠.”
주변의 걱정과 달리 첫 그룹홈은 성공했습니다. 이명숙씨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인사 잘 하는 사람으로 소문났습니다. 첫 그룹홈이 성공하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룹홈은 광주 시내 전역으로 확대됐습니다. 자연히 천 신부의 활동범위는 넓어졌지요. 1985년엔 광주 운암동에 지상 3층짜리 엠마우스 복지관이 설립됐고, 엠마우스산업 등 일터도 만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거주하고 일하고 여가생활을 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1993년에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설립했지요. 천 신부는 이 모든 활동의 울타리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2015년 발달장애인 40여명이 일하는 사회적기업‘엠마우스산업’직원들에게 스마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즐거워하는 천노엘 신부. /김한수 기자


저와 인터뷰할 때 천 신부가 가장 자주 한 말은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그룹홈을 할 당시 ‘정신박약자’로 불리던 이들이 ‘정신지체인’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으로 용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태도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상(賞)을 드리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처음엔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또 한 번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자신이 상을 받으면 그것 자체가 장애인과 자신을 차별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상을 안 받으려 했다는 겁니다.
천 신부가 활동하는 곳에는 모두 ‘엠마우스‘(엠마오)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엠마우스는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찾아가는 마을 이름이지요. 그는 엠마우스로 이름을 붙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로 가시잖아요. 그런데 두 제자는 예수님이 곁에 계시는데도 못 알아보지요. 우리는 늘 곁에 장애인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잖아요?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못 알아본 제자들처럼요.”



2015년 만해실천대상 수상자 천노엘(왼쪽) 신부와 청전 스님. 천 신부는 "나는 20년 연장 신청했다"며 "스님도 인도에서 30년은 더 계시라"며 파안대소했다. /조선일보DB


천 신부는 지난 2021년 사제 수품 65주년, 엠마우스 40주년을 맞아 사제생활을 돌아보며 <장애인 없는 교회가 ‘장애’를 가진 교회>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그룹홈에 살더라도 사회 참여가 없다면, 또 다른 작은 시설에 갇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대로 ‘장애인들이 시민사회와 교회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또 “코로나19 이후 교회는 급진적 변화가 있어야만 쇄신할 가능성이 있다”며 “교회는 장애인의 외침에 응답하고, 장애인들이 사회와 교회에 통합되도록 돕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쇄신은 교회에게 주어진 무시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주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천노엘 신부(오른쪽)가 2024년 4월 열린 '제22회 엠마우스슈퍼풋살대회'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그는 2015년 만해실천대상을 받으며 “나는 (하느님께) 20년 연장 신청했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때 이미 만 나이로 83세였는데,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네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홈페이지에 천 신부의 부음을 알리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겸손하였고, 이쯤에서 멈추는 일 없이 끝까지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골롬반회는 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외침”을 좋아했습니다. 장애인의 외침, 상처 입은 지구 피조물의 외침, 고통 받고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였고, 그 외침에 응답하자고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 대화 안에서, 또 사회와 연대하며 확장되었습니다. 아름다웠던 참 선교사 천노엘 신부를 기억해 주시길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만하면 됐지’라며 멈추지 않았고, 쉬지 않았고, 달릴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달렸습니다. 이제 그의 달리기는 멈췄지만 그가 남긴 외침은 오래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침에 귀 기울이고 응답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