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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데 잘 지냈는교?”(잘 지냈습니까?)
“별일 없지예?”(별일 없지요?)
지난 29일 정오께 부산 동구 수정동 구봉산(404m) 자락 산복도로(망양로) 주택가에 자리한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옆 식당에 70대 부부가 들어서자 침묵이 깨졌다. 먼저 온 70·80대 손님과 70대 부부는 서로 안부를 물었다. 70대 부부의 남편 김용복(74)씨는 “같은 동네 사는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인데요. 여기에서 우연히 만나니 좋습미더(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네 사람은 라면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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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남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빠 하흔(13)이는 “엄마가 장사하셔서 동생과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여기를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남매는 70~80대 할아버지들 옆에 앉아서 라면을 먹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10~80대를 같은 자리에 불러들이는 가게 이름은 ‘끼리라면’이다. ‘우리끼리 라면황제티브이
끼리(끓여) 먹으러 가자’의 줄임말이다. 부산시 동구가 1인 가구 주민과 은둔형 외톨이들이 라면을 먹으면서 소통시키려는 취지에서 6월20일 문을 열었다.



부산 동구 수정동 끼리라면 식당에서 이용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선반에서 라면 1개를 선택해야 한다. 바다이야기릴게임
라면은 10여개 종류가 있다. 김광수 선임기자


끼리라면은 무료다. 누구든지 라면 1봉지를 꺼내서 먹을 수 있다.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무인은 아니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을 안내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1명이 상주한다. 오전 11시~오후 5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펼치는 부승화산업 주식
산 동구 시니어클럽에서 파견한 70대 2명이 3시간씩 근무한다. 70대 2명은 월 20일 근무만 하고 20일이 초과하는 날과 오전 10~11시엔 끼리라면을 운영하는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직원 10여명과 자원봉사를 자처한 주민 3명이 번갈아 근무한다.
끼리라면은 다른 지역에도 있다. 부산 동구형 끼리라면은 몇 가지 차별성이 있다. 사회복지시설이옵션
아니라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에 있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옆 1층 상가 건물을 임대해서 운영한다. 김영주 부산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사회복지시설 안에서 라면을 제공하면 관리가 편리하지만 낙인을 우려해서 사회복지시설 자체를 꺼리는 주민들이 있어서 민간 건물을 임대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사회적 약자들에 한정된 재원을 집중 지원한다는 선별적 복지의 문제점인 낙인 문제를 우려한 세심한 배려가 빛을 발하고 있다. 남녀노소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하루 30~50명씩 꾸준히 찾으면서 개점 한 달 동안 찾은 손님이 1083명이라고 한다.



부산 동구 수정동 끼리라면 식당에선 라면을 고른 뒤에 용기에 넣어서 조리기에 올려놓는다. 3~5분이면 끓는다. 김광수 선임기자


부산 동구형 끼리라면은 성금으로 운영된다. 상가 인테리어와 라면조리기·정수기 구매 등에 필요한 재원 2천만원은 부산 동구 발전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기부한 고향사랑기금이다. 끼리라면 취지에 공감한 후원자들이 낸 성금으로 라면을 산다. 라면을 후원하는 이들도 있고 라면을 먹은 주민이 라면을 기부하기도 한다. 이날도 70대 부부가 라면을 먹은 뒤에 한 상자를 사서 가져왔다. 월세 30만원 등 월 운영비 50만원은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이 부담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만족했다. 집에서 남편을 간호하고 있는 이아무개(79)씨는 “집에서는 혼자 밥 먹기가 싫고 귀찮기도 한데 여기에 오면 바람도 쐴 겸 좋다”고 말했다. 주아무개(73)씨는 “오늘 두번째 왔다. 깔끔하고 맛있다.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오겠다”고 말했다.



부산 동구 수정동 끼리라면 식당은 구봉산(404m) 자락 산복도로(망양로) 주택가에 있어서 이용자들이 반기고 있다. 김광수 선임기자


부산 동구형 끼리라면은 약점인 식당 위치가 되레 손님을 끌고 있다. 끼리라면 식당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진역 1번 출구에서 위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구봉산(404m) 자락 산복도로(망양로) 주택가에 있어서 식당이 부족하다 보니 이용자들로선 무료 라면 가게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개선해야 할 점들도 있었다. 이용자들이 늘고 있지만 겨우 여섯 명만 앉을 수 있었다. 좌석 6개 모두 창문을 보며 라면을 먹는 1인용이었고 마주 보고 앉아서 먹는 식탁은 없었다. 한아무개(85)씨는 “김치가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면을 끓이는 용기가 종이어서 재활용이 힘들었다. 설거지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이용자들이 직접 설거지를 하고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용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은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거나 외출을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주로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양한 분들이 끼리라면을 방문해 불편한 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선임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