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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게임’부터 ‘복면가왕’, ‘굿닥터’까지.

장르도 다르고 플랫폼도 다른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한국에서 기획해 세계로 수출된 방송 포맷이란 점이다. 대본 없는 리얼리티 쇼부터 서사가 튼튼한 휴머니즘 드라마까지, K-포맷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새 한류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K-포맷의 성공 방정식은 탄탄한 기획력과 강한 몰입감, 국경을 넘어 통하는 ‘이야기’ 구조다. K-콘텐츠는 단순 드라마나 K팝을 넘어 ‘포맷’이라는 무형의 지식재산(IP)으로 새 한류의 중심축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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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부터 ‘총백쇼’까지…대본 없는 예능 한류 물결 주도






일본에서 히트를 친 ‘총백쇼’. 디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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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MBC의 인기 예능 ‘복면 가왕’이다. 예전에는 ‘포맷 수출’이라고 하면 드라마 리메이크가 주류였다. KBS 드라마 ‘굿닥터’가 미국 ABC에서 리메이크 돼 히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본 없는 리얼리티 쇼나 예능 포맷이 새 한류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개인회생중 복면가왕 포맷은 미국 폭스(FOX)에서 ‘더 마스크드 싱어(The Masked Singer)’로 재탄생해 전 세계 50여개국에 수출됐다. 복면가왕의 뼈대를 만든 박원우 디톤 대표는 일본에서는 ABC와 공동 제작한 ‘총백쇼(100SHOW)’로 포맷 수출을 확장했다. 참가자의 나이 합이 100세가 돼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설정을 더한 프로그램이다. 일본판 판교 아파트 전세 은 현지 황금시간대에 방영됐고, 한국판은 MBN에서 설 특집으로 편성됐다. 정해진 나이 제한 안에서 최고의 조합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다는 독특한 구조가 글로벌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 대표는 “일본 ABC TV와 공동 제작한 ‘총백쇼’는 대규모 무대와 출연자 확장 등을 통해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고 시청 직장인 시 률 2.5%를 기록하면서 일본 황금시간대에 안착했다”며 “특히 ‘할머니 래퍼’ 등 독특한 출연진 구성이 흥행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포맷은 프랑스, 브라질, 미국 등 주요 방송사와 판매 협상을 진행 중으로,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덴마크서 통한 ‘피의 게임’…공동 개발로 진화






노르웨이에서 리메이크 한 ‘피의게임’.








‘피의 게임’ 포스터.



MBC와 웨이브가 공동 제작한 리얼리티 경쟁 예능 ‘피의 게임’도 대표적인 K-포맷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대본 없이 벌어지는 인간 심리전과 경쟁 구도를 담은 피의 게임은 탈락자가 지하실에서 몰래 게임을 지속한다는 독특한 콘셉트가 리메이크를 결정한 결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피의 게임 노르웨이판의 현지 타이틀명은 ‘스필렛(Spillet)’으로, 노르웨이 최대 민영방송에서 지난해 2월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노르웨이 최대 민영방송사 TV2에서 방영돼 트레이터스, 더 보이스, 댄싱 위드 더 스타스를 제치고 해당 시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가족 대상의 대중적 콘텐츠로 현지화를 겨냥하기 위해 참가자는 일반인에서 유명인으로 변경했고, 게임은 단순화했다. 한국판에서는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제외됐던 패널진은 노르웨이판에서는 도입했다. 액자식 구성으로 콘텐츠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K-포맷 수출이 단순 리메이크나 판매를 넘어 기획 초기 단계부터 공동 개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콘텐츠 전문기업 썬씽스페셜이 운영 중인 ‘포맷랩’이다. 포맷랩은 국내 창작자와 로컬 제작사를 1 대 1로 매칭해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구조다. 단순 페이퍼 기획이 아닌 실제 제작과 해외 진출로 이어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음악게임 포맷 ‘비트박스’는 네덜란드 지상파 방송국에서 첫 시즌을 론칭했고 가족 듀엣쇼 ‘언포게터블 듀엣’은 호주와 뉴질랜드로 수출된 후 국내에서도 정규 시즌으로 편성됐다. 이외에도 ‘스틸 얼라이브’, ‘미싱’, ‘에너미X’ 등 다양한 포맷이 파일럿 제작 지원과 함께 글로벌 플랫폼 진출을 준비 중이다.

게임쇼나 리얼리티쇼는 국내에서는 비주류 장르로 여겨지지만, 유럽과 북미에서는 여전히 인기 장르다. 한국의 포맷 기획력과 연출 역량이 글로벌 시청자들의 취향과 결합하면서 K-포맷이 수출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 수출보다 원천 IP 확대해야”

다만,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유럽 C21 미디어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포맷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유럽 기준 포맷 수출 상위 10개국에서 제외됐다. 반면 영국, 미국, 네덜란드 등 전통 강자들은 여전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OTT 플랫폼들이 적극적으로 포맷을 구입하면서 기존 TV 중심의 접근 방식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 수출보다는 원천 IP 확보와 공동 제작에서의 협상력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정숙 포맷산업협의회 회장은 최근 “단순히 K-포맷을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IP를 확보하고 공동 제작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을 공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세계적으로도 글로벌 OTT 출현으로 방송포맷 수요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저작권청, 중소기업청이 콘텐츠 전담이 아닌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를 중심으로 문화산업 진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포맷 프로그램에 대한 IP는 제작사에게 모두 부여되는 구조다. 중국에서는 2022년 ‘드라마 마스터 버전 제작 규범’을 발표해 산업 표준 역할을 하고 시장을 일부 개방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09년 5억원 규모로 시작한 ‘방송포맷육성지원사업’을 올해 11억9000만원 규모로 확대했다. 콘진원은 K-방송포맷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IP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기 위해 기획부터 고동제작, 쇼케이스, 글로벌 유통까지 전주기에 걸친 맞춤형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 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5 밉런던 쇼케이스’에서는 국내 방송포맷 제작사 9개사가 참가했고, 그간 개발된 포맷들은 미국, 유럽, 남미 지역에서 협상 중이다.

허 회장은 “전세계 포맷 바이어들이 새롭고 신선한 포맷을 물색하는 만큼 다양한 장르의 포맷을 개발하고 정부와 창작자가 원팀이 돼 긴밀히 협력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나인 기자 silkni@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