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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자마자 고정관념을 깨는 문화 실험을 감행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존댓말을 금지하고, 식당에서 선후배 구분 없이 앉게 했으며, 고참과 신참이 같은 방을 쓰게 했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했던 위계서열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다. 박지성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에겐 주장 역할과 리더십 기회를 부여했고, 혹독한 고강도 체력 훈련도 계속했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문화 차이를 무시하고 하룻밤 사이에 한국 선수들에게 유럽 선수처럼 경기하고, 훈련하라고 요구하는 겁니까”라고 따지자 히딩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생각보다 빨리 적응릴온라인
할 수도 있습니다.”

팀 문화가 바뀌고 체력 훈련이 완성되자 마침내 대표팀은 성과를 내기 시작해 4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히딩크는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호주나 러시아에서도 팀 문화를 새롭게 바꾸며 신화를 이어갔다.
‘히딩크 매직’의 핵심은 무엇일까. 마이클 모리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심리학증권시세
과 교수는 신간 ‘집단 본능’을 통해 히딩크는 단순한 축구 감독이 아닌, 의도적 문화개혁을 이끈 ‘문화의 연금술사’이자 ‘체인지 메이커’라고 평가한다. 히딩크는 문화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여러 경험을 통해 체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 패턴을 선택적으로 자극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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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본능, 마이클 모리스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2만2000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저자는 이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늑대, 펭귄, 벌, 개미, 흰개미 등 자연계의 생명체들도 각각의 유전적 프로그래밍이큐티
과 페로몬에 따라 ‘사회적 패턴’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반면 우리 인간은 유전적으로 덜 엄격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사회 패턴이 더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특히 인간은 ‘공동의 문화 지식’이라는 접착제로 연결된 대규모 공동체와 연대감을 느낀다. 단순히 무리(집단)가 아니라 ‘부족(tribe)’이라 칭하는 이유다. 저자는 “인간은 부족적 동주식으로돈벌기
물”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부족주의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로 갈등과 충돌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 유럽 제국주의 시절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야만’ ‘미개’ 부족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저자는 부족주의가 ‘독성’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원래 의미의 ‘부족’과 ‘부족주의’는 ‘협력’과 ‘연대’라는 긍정적이고 유연한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부족 본능’이 작동하는 3가지 층을 설명한다.
첫째는 ‘동료 본능’이다. 집단의 패턴에 맞추려는 욕구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친구와 동료, 이웃을 곁눈질한다. 히딩크는 선배 문화를 허물고 수평적 팀 문화를 추구하며 이 본능을 활용했다.
둘째는 ‘영웅 본능’이다. 유명인과 리더가 되고 싶거나 그들을 추종하려는 욕망이다. 히딩크가 젊은 선수들에게 리더십 기회를 부여한 것도 이 본능을 자극한 사례다.
셋째는 ‘조상 본능’으로 전통을 유지하고 과거와의 연결을 갈망하는 욕구다. 히딩크는 한국인의 ‘끈기’라는 미덕을 찾아내, 한국식 토털 축구를 완성했다.
이 세 가지 부족 본능을 전략적으로 결합한 것이 바로 ‘히딩크 매직’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모든 사람 안에는 이 세 본능이 다면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리더는 팀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더 우람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이유도 바로 ‘개인’이 아닌 ‘집단’의 역량 덕분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뛰어난 협력과 문화 전승 능력을 갖춰, 더 복잡한 도구와 장신구를 개발하고, 인근 씨족과 거래하고 짝짓기했다. 3만5000년 전 러시아 숭기르 유적지의 ‘지배자 무덤’에는 화려한 모자와 상아 구슬들이 묻혀 있었는데, 구슬 장식 하나만 해도 숙련된 작업자 한 명이 1만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다수의 집단이 공동 작업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조잡한 도구와 일회성 그림, 인근 씨족과 싸우거나 서로 잡아먹는 모습이 유적에 남아 있다. 이들은 뇌 크기만 크고 협력 능력은 낮았다.
리콴유가 1965년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 싱가포르를 가난한 섬나라에서 부유한 도시국가로 탈바꿈시킨 것도 ‘이중문화’를 적절히 결합한 데서 비롯됐다. 동남아 집단 문화와 영국식 규율 문화를 결합해 부패를 없애고 청렴 사회를 일으켜 세웠다. 넷플릭스는 ‘영웅 본능’을 자극해 혁신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했다. 넷플릭스 대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창립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당시 최고콘텐츠책임자였던 테드 서랜도스가 사운을 걸고 1억달러를 통 크게 베팅한 결과물이다. 2014년 공룡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 수장이 된 사티아 나델라 CEO도 사내 ‘경청 투어’를 통해 ‘모든 것을 아는’ 문화에서 ‘모든 것을 배우는’ 문화로 조직 문화를 바꿔 혁신과 성장의 DNA를 되살렸다.
히딩크와 리콴유, 나델라의 성공은 ‘부족 본능’과 싸우지 않고, 그 에너지를 적극 포용한 데서 비롯됐다. 문화는 고정불변하지 않다. 리더의 역할은 기존 코드를 해체하고 동료·영웅·조상 본능을 결합한 새로운 공유 문화 코드를 창출하는 것이다. 조직과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화 코드 재설계’의 원칙과 방향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