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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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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차열 명인 부부 등 뒤로 보이는 작품은 최차열 명인이 만든 맥간공예 가구


ⓒ 최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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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농악'


ⓒ 최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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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본 50대 이상이라면 보리에 얽힌 남다른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이라기보다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억일 테지요. 당시 보리밭은 아이들에겐 놀이터였습니다. 푸른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리면 그 자체로도 특별했지만,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더 깊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기도 창업자금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이 보리가 잘 자라야 우리 가족이 배부를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의 보리는 단순한 곡물이 아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슴 아프면서도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기억도 있습니다. 딱히 장난감이 없던 때는 보리 줄기를 이용해 피리를 불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9월1일 부동산대책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여치집을 만들며 놀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때아닌 옛날의 기억들이 소환되는 하루입니다. 그 기억은 삶의 일부로 남아 복잡한 세상 속에서 위로와 웃음을 줍니다.










▲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고향'


ⓒ 최차열




어머니와 보리밥

저는 1952년 음력 5월 7일 서산시 해미면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조금씩 일어서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기억 속에는 여치집을 만들고, 보리피리를 불며 뛰놀던 모습이 선명합니다. 흙장난을 하며 소를 끌고 풀을 뜯기던 그때의 감성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예술적 씨앗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논밭으로 일을 나가셨고, 저는 늘 그랬듯이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부엌 중앙에 걸려있는 채반의 베보자기를 들춰내고, 뿔난 보리밥을 사발에 적당히 덜어내어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지요.
식량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보리를 도정한다고 해도 겉껍질만 벗겨내는 수준이었고, 밥을 짓는 과정에서 속껍질이 일어나 마치 보리밥에 뿔이 난 것 같아 보였습니다.
보리밥이 먹기 싫다며 철없는 투정을 부렸을 때 나를 꼭 안으며 달래 주시던 우리 어머니.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 철이 들고 나서야 어머니께서는 그 보리밥도 배불리 드시지 못했음을 알고 저는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요.
보리밭 사잇길로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 보다 놀기에 더 바빴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래도 보리 한 알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보리피리도 깜부기만 찾아내어 만들었습니다.
놀기만 했을까요. 옛날 부모들은 아들을 낳으면 경사가 났습니다. 일부 설에 의하면, 남아선호사상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근력이 농사일에 더 특화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산이라는 얘기도 나왔으니까요.

저도 보리타작하는 날이 오면 부모님을 도와 보릿단을 날랐습니다. 보리까락에 찔려 따갑고 가려웠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타작이 끝나고 보리까락을 모아 불을 지피면 며칠 동안 연기를 뿜으며 속으로 빨갛게 타들어 갔습니다.










▲  2023 충청남도관광기념품 공모전 은상 수상


ⓒ 최차열




보리, 맥간 예술로 피어나다

보리는 누구에게는 삶의 버거움이었을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하고, 누구에게는 아련한 보리피리의 추억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제게는 어머니가 배를 주리며 아들 입에 한 입이라도 더 넣어주려고 하신 뿔난 보리밥의 내음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깜부기로 보리피리를 만들어야 했던, 이르게 철이 들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보리와 함께 살아왔기에 어른이 된 후 자연스럽게 맥간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작품 활동한 지도 17년이 되었습니다. 각종 공모전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고, 2012년 대한민국공예명품(KC-12-0007호), 2013년 충청남도 인정문화상품제3호, 2019년에는 한국예술문화명인(맥간공예부문)에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시집가는 날'


ⓒ 최차열




보리 줄기가 만난 '맥간공예'

맥간(麥幹)공예라 함은 보리 줄기를 이용하여 모자이크 기법과 목칠공예 기법을 합해 만드는 예술 장르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화려함과 은은함을 동시에 자아내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크기와 형태에 관계없이 문양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소재 특성상 섬세한 부분까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 각종 사무용품, 보석함, 액자, 찻상, 가구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아름다움을 곁들인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 신경 써야 할 점은 입체감 표현입니다. 보릿대의 결과 방향, 색깔을 조화롭게 배치해야 입체감 있는 작품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  2019 서산문화회관 초대전


ⓒ 최차열




작품을 감상할 때도 빛의 방향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는 위치나 빛의 방향에 따라 변하는, 마술 같은 예술작품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습니다.

맥간공예를 하기 위해 준비할 재료는 보리 줄기를 채취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지요. 대단위로 경작하는 보리밭보다는 엿기름을 기르기 위해 소규모로 키우는 보리밭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주인에게 수확 철에 맞추어 이삭을 따 놓고 보리 줄기를 가져와 마디마디 다듬고,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서 말려서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자칫 수확 철을 놓치면 달리 보릿대를 구할 방법이 없어, 보릿대 준비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전통문양 보석함 세트'


ⓒ 최차열




기하학적문양에서 '전통미' 발견

맥간공예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정확히 전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여인들의 규방공예와 함께, 보릿대에 염색을 하여 베갯잇이나 목침, 인두판 장식으로 사용되었음을 국립민속박물관과 짚풀생활사박물관의 소장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색상과 기하학적문양의 조화로움에서 조상들의 예술적 감각을 찾아볼 수 있지요. 수수하기만 했던 맥간공예가 지금의 현대적 감각을 갖춘 공예로 발전해 오기까지는 맥간공예원 이상수 선생의 노력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은 그동안 맥간공예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고 많은 제자를 통하여 맥간공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보급하는데 열과 성을 다해 왔기 때문입니다.










▲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인두판과 목침'


ⓒ 최차열




전통과 현대가 만나 가치 창출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예술 분야도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공예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요. 보잘것없는 재료라 해도 하는 사람의 마음과 열정에 따라 공예의 깊이는 더해질 수 있습니다.
보리 줄기는 분명 귀한 재료는 아니었습니다. 하찮게 버려지는 보릿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맥간공예는 새롭게 부각되는 공예분야로써 전통문양은 물론 현대적 패턴의 문양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맥간 공예는 노랗게 잘 익은 햇볕 냄새를 물씬하게 맡을 수 있는 특별한 공예입니다. 뿔난 보리밥의 불편한 기억을 아스라이 더듬어 보듬을 수 있는 그리움의 공예기도 하지요.

우리의 어린 시절 애환이 담긴 보리 줄기와 더불어 섬세함의 깊이를 더하게 되면, 제 기억은 종달새 우짖던 보리밭으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맥간공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면, 전통적인 기술이 현대의 감성과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차열 명인의 맥간공예 작품 '전통머리장'


ⓒ 최차열




열정과 끈기로 명인 반열에

저의 예술적 자질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자질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에 대한 욕심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고자 하면 꼭 성사시켜야 하는 고집이 있었고, 한번 시작하면 샘솟는 열정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의 결과라고도 해두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열정과 끈기 덕택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제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저는 지금 해왔던 것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공예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선택이었는지를 매일 느끼면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