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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사람들의 손을 잡고 걷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생 때다. 날 때부터 없었던 한쪽 눈이 의료 사고 탓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어른들은 가난했고 무지했다. 갈고리에 태아의 눈이 찍혀 실명된 것을 알고도, 안암(眼癌)으로 오진해 눈알을 통째로 들어낸 사실을 알게 되고도 법을 몰라 항의 한번 못 했다.
매일 아침 오른 눈에 플라스틱 의안을 끼고 등교하알라딘릴게임
던 아이는, 그래서 변호사가 됐다. “바꿀 건 바꿔야 하고, 할 말은 해야 하는 모난 성격 탓에” 15년째 여성, 아동, 장애인, 이주민, 성 소수자 등 약자를 위한 무료 변론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더욱 독하게 싸울 일이 생겼다.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검찰 개혁 4법’이다. 박지원 의원과의 ‘한쪽 눈’ 소동도 그 법 공청회에서 벌재택크
어졌다.
김예원은 “그 법이 시행되면요…”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어요. 돈 없고 힘없는 제 의뢰인들에게 ‘억울하니 고소합시다’ ‘법정에서 싸워봅시다’란 말을 꺼낼 수조차 없을 테니까요. 사적 보복이 난무하는 지옥문이 열릴 겁니다.”
◇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오해
−검찰개릴게임 손오공
혁법 공청회에서 박지원 의원에게 ‘(저처럼) 한쪽 눈 없으시잖아요’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눈 상태가 저와 같은데도 그토록 오랜 기간 열심히 의정 활동 하시는 모습에 내적 친밀감이 느껴져 불쑥 던진 말인데, 무례했다.”
−악의를 갖고 한 말이 아니던데, 왜 사과했나?
“제가 잘못한 게 맞다. 본인이 밝챠트분석
히지 않은 사실을 제가 공적인 자리에서 말해버린 것이니 나이브하고 경솔했다. 다행히 사과를 받아주셨다.”
−‘한쪽 눈’ 소동으로 발언의 본래 취지가 묻혔다.
“장애가 있지만 목소리 크고 공부도 잘했던 나는 큰 차별과 배제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어 현장을 뛰어보니 수많은 장애인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억울한 증권이벤트
일을 겪고 있더라.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법안이 약자와 서민의 고통, 억울함을 가중시키기에 호소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 4법(검찰청 폐지법·공소청 설치법·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국가수사위원회법)의 문제가 뭔가.
“검찰 개혁을 한다면서 1차 수사기관, 즉 경찰의 판단을 뒤집을 수 없도록 검찰의 ‘수사 통제 기능’을 날려버린 것이다.”
−검찰의 수사 통제 기능이 왜 중요한가.
“경찰이 수사를 해오면 법률 전문가인 검찰은 과하거나 미진한 부분은 없는지, 위법성이 없는지 검토하고 보완 수사한다. 그래야 충실한 기소가 이뤄지고 법정에서 가해자를 처벌받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개혁 법안에서는 검찰의 보완 수사권 폐지는 물론,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조차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때도 검찰의 수사 통제 권한은 남아 있었다. 경찰의 불송치 의견에 피해자가 이의 신청했을 경우 검찰이 보완 수사를 통해 혐의를 발견하면 기소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돼야 하지만, 검찰의 수사 통제 기능을 없애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수사·기소의 분리는, 수사를 개시한 사람이 기소까지 하게 되면 그 힘을 남용할 수 있으니 ‘직접 인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 특수부가 그동안 휘둘러온 직접 수사 개시권만 폐지하면 된다는 뜻이다. 1~2%에 불과한 특수부 사건의 부작용을 없애려고, 98% 일반 형사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까지 없애면 기소의 질이 떨어지고 공소 유지가 어려워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에게 돌아온다.”



지난 7월11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검찰개혁 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박지원 의원의 질문을 받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 그는 답변 과정에서 "의원님도 (저처럼) 한쪽 눈 없으시잖아요"라고 말해 논란이 되자 바로 사과했다. /뉴시스


◇ 세계 유례없는 수사기관 난립
−4년 전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부터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형사 사법 체계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제도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에 역행했다. 사건 접수부터 송치까지 3~4개월이면 끝날 사건이 2~3년씩 걸리기도 했다. 일반 사건과 중대 사건이 분리돼 ‘관할’이 애매해지면서 피해자는 검경을 오가며 뺑뺑이를 돌았다. 앞으로 중수청, 국수위까지 생기면 그 혼돈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법률 비용도 급증했다던데.
“검수완박 전에는 모든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전건 송치’돼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됐다. 반면 수사권 조정 후에는 개인이 건당 330만~550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들여 이의 신청을 해야 한다. 그래도 그때는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해서 경찰이 내린 결론을 뒤집고 기소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검찰이 이의 신청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수사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지 않나?
“중수청은 경찰과 같은 1차 수사기관일 뿐 수사 통제 기관이 아니다. 국수위 같은 위원회는 형사법 전문성이 없어 형식적 심사에 그칠 뿐이다. 중수청에서 안 되면 국수위로, 다시 국심위로 이의 신청을 하는 동안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지연된다. 그 사이 피해자는 나가떨어지고 가해자는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개혁 법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민주주의는 원래 절차적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편? 이건 명백한 퇴보다. 특히 정보와 자원에 취약한 피해자들이 겪을 고통이 너무도 크다. 세계 유례가 없는 수사기관의 난립 속에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법을 공부해서 이의 신청을 하고 돈과 시간을 들여 알아서 싸우라는 얘기다.”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검찰 개혁 4법에 대해 김예원 변호사는 2000명 검찰 공무원들을 놀게 하는 '검찰개꿀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남강호 기자


◇ 검찰개혁법? 검찰개꿀법!
−민주당도 이런 문제를 알 텐데 왜 밀어붙일까?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모르는 것 같다. 이 법안은 제도를 검경의 권력 싸움으로만 이해하는 분들이 1차 수사권자(경찰)의 결정이 법정까지 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궁리하며 만들었다고 본다. 수사 시뮬레이션도 없이 만든 탓에 실무와 동떨어져 있고 조악하기 짝이 없다.”
−경찰은 무능하고 검찰은 유능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두 기관의 탄생 이유와 역할이 다르다는 얘기다. 경찰은 수사에 집중하고, 검찰은 수사 보완과 통제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국민 혼란이 줄고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친검이냐’는 비판을 듣던데.
“1000건 넘는 형사 사건을 맡으면서 나만큼 검찰과 싸운 변호사도 없다. 빛 안 나는 일반 사건은 소홀히 하고 출세를 위해 디저트처럼 달콤한 특수부 사건에만 몰려가는 검사들을 비판했다. 나의 주장은 검찰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특수부와 직접 인지 수사권을 없애고, 모든 부서를 형사부로 만들어 민생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현재의 개혁 법안은 2000명 검찰 공무원들을 놀게 하는 ‘검찰개꿀법’이다.”
−경찰은 권력이 비대해지는 만큼 일도 많아지겠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엔 ‘수사 부서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생겼다. 검경협의체에 일선 경찰이 요구한 것도 검찰이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를 하지 말고 직접 보완 수사하라는 거였다.”
−민형배 검찰정상화 특위 위원장은 추석 밥상에 검찰청 폐지를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이 없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리도 없는데 왜 서두르나. 대표 법안만 4개, 실제로는 8개 법안인데 각각의 법안을 보면 업무 흐름도가 나오지 않고 비용 추계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법안마다 내용 충돌도 심각하고, 검찰수사권을 전제로 한 수백 개 다른 법률과의 조정도 없다. 형사 변호사들도 서로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다.”
−검찰청 해체를 해경 해체에 비유했더라.
“세월호에 대한 울분으로 해경을 없애자 중국의 불법 조업 어선들만 살 판이 났다. 평범한 어민들 피해가 크니 문재인 정부가 다시 해경을 부활시켰다. 검찰청 폐지는 어민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가 지난 7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 개혁 법안 공청회에서 법안 반대 이유를 진술하다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뉴스1


◇ 적이 아니라 다행
−왜 무료 변론을 하나?
“수임료만 포기하면 내 도움이 절실한 분들과 보람 있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어서.”
−대형 로펌 태평양,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를 나와 독립한 이유인가?
“그렇다. 좀 더 현장 밀착형으로, 전국구로 일하고 싶었다.”
−세 아이 키우며 변론도 하고 사회복지사, 성폭력 상담가 자격까지 땄더라.
“그 모든 일이 내 삶의 동력이고 에너지다.”
−법정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변론한 적도 있던데.
“도저히 연기해선 안 될 재판이었고, 증인 심문을 내가 직접 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후엔 유축기를 가지고 다녔다(웃음).”
−법정에서 자신의 의안을 빼내 보여준 적도 있더라.
“의붓아버지 폭행과 학대로 한쪽 눈을 잃게 된 다섯 살 소년을 변론할 때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화가 나 의안을 뺀 뒤 벌건 속살을 보여주며 ‘한쪽 눈이 없다는 것’은 한눈으로만 세상을 봐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매일 아침 손을 씻고 밤새 소독한 안구를 착용하고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이 아이가 초중고 과정을 거치며 상상하지 못할 무수한 시선과 차별 앞에 놓이는 일’이라며 중형을 호소했다.”
−동료들로부터 ‘적이 아니라 다행’이란 소릴 듣는다던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웃음).”
−검찰개혁법 공청회에선 왜 울먹였나.
“지난 15년 동안 내가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돈이 없고, 운도 없고, 배움의 기회도 없었던 분들이다. 검찰개혁법안으로 형사 사법 체계가 왜곡되면 그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분들 얼굴이 떠올라서….”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법이 서민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 1차 수사기관의 판단이 잘못되어도 뒤집을 수 없게 법을 바꾸는 것이 서민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이 법을 발의한 의원이 누군지는 잊는다. 이 법을 시행한 대통령만 기억한다.”
☞김예원
198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여고와 강원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9년 사법시험 합격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공익변호사,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상임변호사로 일하다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 여성·아동·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범죄 피해자들을 무료 변론해왔다. 변호사 공익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사람을 변호하는 일’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