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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라는 다섯 글자에 갑자기 아련함에 추억 돋는 중장년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커버가 단아한 궁서체로 돼 있는 ‘자연’ 교과서의 선명한 사진에 나타나는 마름모꼴 머리에 길쭉한 몸통을 가진 괴상한 모양새의 생명체. 면도칼로 두 동강을 내면 두 마리가 되고, 머리 부분만 갈라놓으면 쌍두(雙頭) 괴수로 변모하는 기괴한 재생 능력. 도대체 이런 걸 왜 배웠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돌이켜보면 특이하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짐승입니다. 한국에서 플라나리아는 생물 다양성의 지표로 인식되기도 해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올해 초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신종 습지2011년추천종목
플라나리아 스물한 종류를 발견한 사실을 밝히면서 “서식지의 습도, 온도 등 환경 변화에 민감하여 환경 지표 생물로 알려져 있으며, 해외에서는 열대우림 보존을 위해 이 생물을 활용하고 있다”고 알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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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플라나리아들이 이렇듯 생명의 상징으로 환영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는 약간만 과장된 표현을 쓰자면 지금 ‘거대 괴물 플라나리아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플라나리아 가문의 일원으로 유달리 길쭉한 몸뚱이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망치머리벌레(Hammerhead Flatworm)’가 지금 아메리카아이적금
의 토양을 초토화시키면서 가물치와 버마비단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생태파계 외래침입종으로 등극했어요. 가물치·버마비단뱀과 마찬가지로 망치머리벌레 역시 아시아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각 주정부들은 창궐하는 망치머리벌레가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어떻게 대처하고 퇴치해야 하는지를 계도하는 데 여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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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는 외래유입종 망치머리벌레./Georgia Department of Agriculture


망치머리벌레·망치머리납작벌레·망치머리민달팽이 등으로 불리는데 플라나리아가 속한 가문인 편형동물문의 한 분파인 육상플라나리아의 일원입니다. 끈적거중앙에너비스 주식
리고 꼬물거리는 생김새는 전형적인 플라나리아이지만 머리꼴과 몸의 크기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요. 우선 ‘망치머리’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두부(頭部)는 가로졌고 양옆으로 휘어지며 길쭉한 것이 망치를 닮기도 하고 반달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가장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분류학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귀상어예요. 드래곤볼의 프리더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머리가 양옆으로 툭 튀어나오고 끄트머리에 눈알을 데굴데굴 씰룩이는 공격상 강한 상어 말이죠. 갈색과 잿빛 등 주로 어둑하고 칙칙한 몸 색깔을 하고 있으며 다 자라면 몸길이는 30㎝에 이릅니다.



망치머리벌레가 나뭇잎 위에서 몸을 둥글게 또아리튼 모습./Pierre Gros. University of Arkansas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플라나리아가 단지 생긴 게 징그러워서 유해 생물로 퇴치령이 떨어진 것은 아닐 겁니다. 도대체 어떤 측면에서 해로운 걸까요? 우선 녀석들의 주식은 지렁이입니다. 지렁이는 흙의 수호신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에겐 그저 장마철 땅 위로 기어올랐다가 뙤약볕에 말라죽어가는 기괴한 습성을 가진 미물 정도로 인식되지만 이 녀석들이 흙속에서 영양분을 찾아 먹고 배설하는 과정을 통해 흙은 에너지를 머금고 비옥해집니다. 이런 지렁이들을 찾아내 무참하게 먹어치우니 그냥 플라나리아가 아니라 괴물 플라나리아인 거죠. 게다가 이들은 복어와 비슷한 독성 물질을 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학습 효과로 인해 천적일 법한 동물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게 돼요.



몸을 또라이튼 망치머리벌레. 외래유입종으로 지정됐다./Maine State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의 초강력 독은 아니지만, 피부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냥 호신용 독만 품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몸속에는 독과 함께 기생충까지 품고 있어요. 독소와 병균을 품고 바위 밑과 물가, 땅속을 끈적한 몸으로 꾸불텅대면서 기어다니면서 핑크빛 몸뚱아리의 지렁이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며 먹어치우는 장면을 50배쯤 확대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말 그대로 한여름날의 납량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당국은 망치머리벌레의 유해성을 경고하면서 보는 즉시 퇴치할 것을 적극 독려하고 있어요. ‘살려선 안 된다’며 즉결 처분을 강제하는 건 가물치·버마비단뱀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칼로 베어서 처치하지는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많은 세대가 교과서에서 배워서 익히 알고 있는 플라나리아의 바로 그 형질 때문이죠.



망치머리벌레가 먹잇감 지렁이를 공격하고 있다./Maine State


두 동강 내면 두 마리가 되고, 세 동강 내면 세 마리가 됩니다. 머리 부분만 갈라놓으면 쌍두용이 되고, 세 갈래로 칼질을 하면 삼두용이 됩니다. 이 족속이 널리널리 퍼지게끔 도와주는 핵심 도우미가 되는 셈이죠. 현지 관계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망치머리벌레는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모두 취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분절은 이들의 주요 번식 수단입니다. 일단 몸뚱아리에서 뒷부분이 떨어져나갑니다. 머리와 몸통 부분은 뒷부분을 남겨둔 채 앞으로 스멀스멀 기어갑니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몸뚱아리 뒷부분에서 열흘쯤 지나면 스르르 머리가 자라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기괴한 번식을 한 달에도 몇 차례를 한다고 해요. 이런 원시적인 번식뿐 아니라 실제 알을 통한 부화까지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몸을 구부린 망치머리벌레./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우리가 미물이라 하찮게 여기는 원시 짐승들이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대대손손 번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베어 죽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가장 확실하게 권하는 퇴치법은 비눗물·식초·레몬즙 등 자극성 있는 액체에 넣어서 발버둥치지 못하게 숨통을 끊는 방법, 혹은 생포한 자리에서 냉동시켜서 완전히 냉동 미라로 만들어버리는 법 등이 바람직한 퇴치법으로 계도되고 있습니다. 플라나리아가 속해있는 편형동물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무척추동물계에는 정말 다양한 문파가 있습니다. 곤충과 거미·지네·게·가재 등으로 친숙한 절지동물문이 있고요. 문어·오징어·달팽이·조개가 속해있는 연체동물문이 있죠. 해파리·말미잘을 아우르는 강장동물문과 불가사리·성게가 얼굴마담 격인 극피동물문이 있습니다.



망치머리벌레(오른쪽)가 지렁이를 막 사냥한 모습./Pierre Gros. University of Arkansas


지렁이·거머리 등으로 친숙한 환형동물문을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수산물로 유명한 멍게(우렁쉥이)가 대표 선수 격인 척삭동물문은 무척추동물 월드에서 가장 진화된 종류라는 ‘반전’이 있습니다. 이 중 편형동물문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신비롭고 섬뜩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우리 일상과 가까이 있어요. 편형동물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가 플라나리아고 다른 하나는 악명 높은 기생충들입니다. 이름만으로도 벌써 살짝 몸서리가 처지는 흡충과 촌충이 모두 편형동물 집안입니다. 암수의 구분이 없고 아주 기본적인 뇌·근육·신경을 갖고 있지만 항문은 없습니다. 동물의 기본적인 생김새인 좌우 대칭형의 모양새를 갖추는 단계가 바로 편형동물부터입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관과 신체 체계도 갖추지 못한 원시적인 미물이지만, 그런 원시성으로 인해 보다 강력한 생존력으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번성하고 있는 것이죠.


아메바부터 침팬지까지, 사람 빼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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