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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 기자]
▲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린 디아스포라 영화제
ⓒ 윤한샘
지난 18일, 전날까지 비바람이 치더니 날씨가 맑아졌다. 집을 나서는데 햇살과 바람이 가을처럼 청량하다. 작년까지 5월이면 반팔을 입고 더위에 힘들었는데, 올해는 아직 점퍼를 걸치고 있다.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쾌청한연예인주식종목
날씨에도 기후 걱정이라니, 살면 살수록 세상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다.
45주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이 열리던 시간, 인천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차이나타운 나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인천역 주변 차이나타운과 일본 적산가옥 지구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 나들이 장소였다. 영종도에 드라이브를 갔다가 송도를 거쳐양순모
차이나타운에서 먹는 하얀 짜장면은 인생의 별미였다. 춘장이 들어있는 일반 짜장면과 달리 하얀 짜장은 간장 베이스에 고기를 볶아 짜지 않고 담백하니 맛이 좋았다.
오늘 목적은 드라이브도 짜장면도 아니다. 올해 열세 번째 열리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다. 인천을 대표하는 크래프트 맥주도 마실 수 있다길래 처음으로 인천행 지하철을 탔다. 10년 전pc게임
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인천역을 가려면 하세월이었는데, 지금은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린다. 송도까지 지하철이 깔리면서 너무 편해졌다. 서울에 갇혀 있으니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더 모르는 거 같다.
환대의 도시, 인천
올스탁
▲ 1883년 개항한 제물포
ⓒ 윤한샘
금호타이어주식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흩뿌리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살던 고향이나 조국에서 쫓겨나 타지에 정착한 민족이나 공동체를 의미한다.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침략해 유대인들을 포로로 데려간 바빌론 유수에서 유래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우리 역사에도 깊이 침전되어 있다. 멀리는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갔던 고려 여인들부터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17만 명의 고려인과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까지, 역사의 상흔과 분열의 기억은 우리 핏줄에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고 디아스포라가 단절과 고통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과 언어는 흐려짐에도 문화적 정체성과 유대감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나아가 소수 계층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까지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록과 현상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다양성과 공존 그리고 포용의 가치를 디아스포라의 속에 담아낸다.
2013년 인천에서 시작된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경계를 넘어 공존의 가능성을 성찰하고 소통하는 아시아 유일의 영화제다.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인천 아트플랫폼과 신포동 주변 독립 영화관에서 장편 22편, 단편 31편, 총 53편의 영화들이 관람객을 만났다.
왜 인천일까? 디아스포라 영화제 총괄을 맡고 있는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천은 개항의 공간이라는 점, 한국전쟁 실향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 국내 최대 차이나타운, 남동공단과 송도의 이주민, 고려인이 집단 거주하는 함박마을, 최다 탈북인들의 정착지입니다. 1902년 한국 최초의 이민선이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난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항구와 공항을 통해 떠나며 들어옵니다. 한 세기의 기억을 통해 떠나고 들어오는 많은 이들의 설렘과 슬픔,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함께 품는 도시, 환대의 도시 인천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환대의 도시. 디아스포라의 어두운 면만 떠올리던 나는 잠시 멍해졌다.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교육받고 권위의식에 길든 우리 세대에게 환대의 여유가 있을까? 문화와 인종적 다양성을 환대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아닌, 젊은 세대라면 가능할지도. 온몸에 스며있는 꼰대의 기운을 털어내기 위한 노력이, 원래 쉽지 않은 법이다.
인천, 짜장면, 맥주
▲ <고스트캣 앙주> 야외상영을 하고 있다.
ⓒ 윤한샘
인천 아트플랫폼에 도착하자 짜장면을 먹으러 수십 번도 와 본 차이나타운이 생경하게 보였다. 일본 적산가옥과 중국 스타일 건물이 길 하나를 두고 정확히 나뉘어 있었구나. 경계, 그전에는 왜 이게 안 보였을까.
1876년 부산, 1880년 원산에 이어 1883년 세 번째로 개항한 인천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동시에 정착했던 도시였다. 이때 넘어온 중국인들이 한국 화교 사회를 형성했다. 짜장면은 본래 이주 중국 노동자들이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춘장과 국수를 섞어 먹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를 정식 음식으로 팔기 시작한 곳이 1905년에 오픈한 공화춘이다. 우리의 일상 음식이 된 짜장면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가장 잘 상징하고 있는 음식인 것이다.
인천 아트플랫폼에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 무리 사람들이 폐나무로 재생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바로 뒤, 환대의 광장에서는 마침 야외 상영이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영화 제목은 <고스트캣 앙주>,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젊은이들이 준비된 소파와 의자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이 가을 속 축제처럼 느껴졌다.
▲ 디아스포라영화제와 맥주의 만남
ⓒ 윤한샘
화장실 건물로 연결된 통로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만국시장'. 친환경 상품과 공예품들이 옹기종기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부스에서는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참여한 맥주는 총 네 곳, 인천맥주,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 시민맥주, 소셜 드링크스였다. 인천맥주는 이곳의 터주대감이다. 인천 아트플랫폼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양조장과 직영 펍이 있다. 개항로 맥주는 인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맥주다. 당연히 한 잔 안 마실 수 없지. 인천 맥주 박지훈 대표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개항로를 주문했다. 개항로는 라거 맥주다. 깨끗하고 깔끔한 목 넘김이 오늘 같은 날씨에 딱 어울린다.
다른 맥주로는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의 나비잠을 선택했다.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은 최근 인천 연수구에 생긴 맥주 양조장이다.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만큼 개성 있고 트렌디한 맥주가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름처럼 양조장은 작지만 맥주가 품고 있는 꿈은 어디보다 크다. 이런 젊은 세대들의 양조장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돈보다 꿈을 좇아 도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그 안에 크래프트 맥주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나비잠은 바이젠이다. 섬세한 바나나 향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입안을 흩뿌렸다.
▲ 개항장과 나비잠. 생분해성 플라스틱 컵에 맥주를 담아준다.
ⓒ 윤한샘
경계와 공존
이 땅에 맥주가 언제 들어왔을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산일 수도 있고 인천일 수도 있다.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1871년 인천 강화도에서 찍힌 한 남자의 사진이다.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며칠 전, 5월 30일, 김진성이라는 하급 관리가 미군 콜로라도호 갑판에서 빈 맥주병을 안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미군의 협상 대상자로 들어간 김진성이 아마 배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기념품으로 가져온 듯하다. 이탈리아 사진 기자 펠리토 베아체는 동양인의 미개한 모습을 기록하고자 이 사진을 남겼다.
이 자료로만 따지면 인천이 최초로 맥주가 들어온 도시가 된다. 개항 이후 인천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삿포로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맥주 또한 디아스포라를 따라 한반도로 흘러온 흔적이었다.
그렇게 보면 인천을 대표하는 맥주 양조장이 없었다는 게 아이러니해 보인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항구 노동자가 있는 곳에 항상 맥주가 있었다. 만약, 영등포 대신 제물포에 맥주 양조장이 지어졌다면 지금 인천은 맥주의 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일제에 의해 1933년 서울 영등포에 조선맥주와 소하기린맥주 양조장이 건설되기 전, 인천 제물포가 강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맥주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인천이라는 도시가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 유니짜장면과 칭다오 맥주
ⓒ 윤한샘
영화제를 둘러보고 결국 저녁은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하얀 짜장집 앞은 이미 긴 대기 줄로 복작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후보, 유니짜장면을 먹으러 가야지. 이곳에도 대기 줄이 길면 발길을 돌리려고 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다.
'유니'는 '잘게 다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곱게 다진 고기와 야채를 춘장에 볶아 낸 짜장면이 유니짜장면이다. 손이 많이 가 서울에서는 먹기 쉽지 않다. 요즘 짜장면과 달리 단맛이 강하지 않아 오히려 좋다. 한 그릇에 만 원이 예전에는 비싸다고 느껴졌는데, 요즘 물가에 비하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반주는 칭다오. 칭다오 또한 독일에서 건너온 독일인들에서 시작되었으니 결국 디아스포라의 산물이다. 짜장면과 맥주, 좋아하는 두 음식이 디아스포라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경계는 허물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어떻게든 공존하게 되어 있다. 고기인지 야채인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유니짜장이 오늘따라 더 맛있다.
덧붙이는 글
▲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린 디아스포라 영화제
ⓒ 윤한샘
지난 18일, 전날까지 비바람이 치더니 날씨가 맑아졌다. 집을 나서는데 햇살과 바람이 가을처럼 청량하다. 작년까지 5월이면 반팔을 입고 더위에 힘들었는데, 올해는 아직 점퍼를 걸치고 있다.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쾌청한연예인주식종목
날씨에도 기후 걱정이라니, 살면 살수록 세상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다.
45주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이 열리던 시간, 인천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차이나타운 나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인천역 주변 차이나타운과 일본 적산가옥 지구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 나들이 장소였다. 영종도에 드라이브를 갔다가 송도를 거쳐양순모
차이나타운에서 먹는 하얀 짜장면은 인생의 별미였다. 춘장이 들어있는 일반 짜장면과 달리 하얀 짜장은 간장 베이스에 고기를 볶아 짜지 않고 담백하니 맛이 좋았다.
오늘 목적은 드라이브도 짜장면도 아니다. 올해 열세 번째 열리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다. 인천을 대표하는 크래프트 맥주도 마실 수 있다길래 처음으로 인천행 지하철을 탔다. 10년 전pc게임
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인천역을 가려면 하세월이었는데, 지금은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린다. 송도까지 지하철이 깔리면서 너무 편해졌다. 서울에 갇혀 있으니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더 모르는 거 같다.
환대의 도시, 인천
올스탁
▲ 1883년 개항한 제물포
ⓒ 윤한샘
금호타이어주식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흩뿌리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살던 고향이나 조국에서 쫓겨나 타지에 정착한 민족이나 공동체를 의미한다.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침략해 유대인들을 포로로 데려간 바빌론 유수에서 유래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우리 역사에도 깊이 침전되어 있다. 멀리는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갔던 고려 여인들부터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17만 명의 고려인과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까지, 역사의 상흔과 분열의 기억은 우리 핏줄에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고 디아스포라가 단절과 고통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과 언어는 흐려짐에도 문화적 정체성과 유대감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나아가 소수 계층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까지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록과 현상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다양성과 공존 그리고 포용의 가치를 디아스포라의 속에 담아낸다.
2013년 인천에서 시작된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경계를 넘어 공존의 가능성을 성찰하고 소통하는 아시아 유일의 영화제다.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인천 아트플랫폼과 신포동 주변 독립 영화관에서 장편 22편, 단편 31편, 총 53편의 영화들이 관람객을 만났다.
왜 인천일까? 디아스포라 영화제 총괄을 맡고 있는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천은 개항의 공간이라는 점, 한국전쟁 실향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 국내 최대 차이나타운, 남동공단과 송도의 이주민, 고려인이 집단 거주하는 함박마을, 최다 탈북인들의 정착지입니다. 1902년 한국 최초의 이민선이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난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항구와 공항을 통해 떠나며 들어옵니다. 한 세기의 기억을 통해 떠나고 들어오는 많은 이들의 설렘과 슬픔,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함께 품는 도시, 환대의 도시 인천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환대의 도시. 디아스포라의 어두운 면만 떠올리던 나는 잠시 멍해졌다.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교육받고 권위의식에 길든 우리 세대에게 환대의 여유가 있을까? 문화와 인종적 다양성을 환대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아닌, 젊은 세대라면 가능할지도. 온몸에 스며있는 꼰대의 기운을 털어내기 위한 노력이, 원래 쉽지 않은 법이다.
인천, 짜장면, 맥주
▲ <고스트캣 앙주> 야외상영을 하고 있다.
ⓒ 윤한샘
인천 아트플랫폼에 도착하자 짜장면을 먹으러 수십 번도 와 본 차이나타운이 생경하게 보였다. 일본 적산가옥과 중국 스타일 건물이 길 하나를 두고 정확히 나뉘어 있었구나. 경계, 그전에는 왜 이게 안 보였을까.
1876년 부산, 1880년 원산에 이어 1883년 세 번째로 개항한 인천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동시에 정착했던 도시였다. 이때 넘어온 중국인들이 한국 화교 사회를 형성했다. 짜장면은 본래 이주 중국 노동자들이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춘장과 국수를 섞어 먹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를 정식 음식으로 팔기 시작한 곳이 1905년에 오픈한 공화춘이다. 우리의 일상 음식이 된 짜장면이야말로 디아스포라를 가장 잘 상징하고 있는 음식인 것이다.
인천 아트플랫폼에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 무리 사람들이 폐나무로 재생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바로 뒤, 환대의 광장에서는 마침 야외 상영이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영화 제목은 <고스트캣 앙주>,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젊은이들이 준비된 소파와 의자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이 가을 속 축제처럼 느껴졌다.
▲ 디아스포라영화제와 맥주의 만남
ⓒ 윤한샘
화장실 건물로 연결된 통로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만국시장'. 친환경 상품과 공예품들이 옹기종기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부스에서는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참여한 맥주는 총 네 곳, 인천맥주,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 시민맥주, 소셜 드링크스였다. 인천맥주는 이곳의 터주대감이다. 인천 아트플랫폼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양조장과 직영 펍이 있다. 개항로 맥주는 인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맥주다. 당연히 한 잔 안 마실 수 없지. 인천 맥주 박지훈 대표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개항로를 주문했다. 개항로는 라거 맥주다. 깨끗하고 깔끔한 목 넘김이 오늘 같은 날씨에 딱 어울린다.
다른 맥주로는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의 나비잠을 선택했다. 엑스트라 스몰 브루잉 룸은 최근 인천 연수구에 생긴 맥주 양조장이다.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만큼 개성 있고 트렌디한 맥주가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름처럼 양조장은 작지만 맥주가 품고 있는 꿈은 어디보다 크다. 이런 젊은 세대들의 양조장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돈보다 꿈을 좇아 도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그 안에 크래프트 맥주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나비잠은 바이젠이다. 섬세한 바나나 향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입안을 흩뿌렸다.
▲ 개항장과 나비잠. 생분해성 플라스틱 컵에 맥주를 담아준다.
ⓒ 윤한샘
경계와 공존
이 땅에 맥주가 언제 들어왔을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산일 수도 있고 인천일 수도 있다.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1871년 인천 강화도에서 찍힌 한 남자의 사진이다.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며칠 전, 5월 30일, 김진성이라는 하급 관리가 미군 콜로라도호 갑판에서 빈 맥주병을 안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미군의 협상 대상자로 들어간 김진성이 아마 배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기념품으로 가져온 듯하다. 이탈리아 사진 기자 펠리토 베아체는 동양인의 미개한 모습을 기록하고자 이 사진을 남겼다.
이 자료로만 따지면 인천이 최초로 맥주가 들어온 도시가 된다. 개항 이후 인천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삿포로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맥주 또한 디아스포라를 따라 한반도로 흘러온 흔적이었다.
그렇게 보면 인천을 대표하는 맥주 양조장이 없었다는 게 아이러니해 보인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항구 노동자가 있는 곳에 항상 맥주가 있었다. 만약, 영등포 대신 제물포에 맥주 양조장이 지어졌다면 지금 인천은 맥주의 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일제에 의해 1933년 서울 영등포에 조선맥주와 소하기린맥주 양조장이 건설되기 전, 인천 제물포가 강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맥주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인천이라는 도시가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 유니짜장면과 칭다오 맥주
ⓒ 윤한샘
영화제를 둘러보고 결국 저녁은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하얀 짜장집 앞은 이미 긴 대기 줄로 복작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후보, 유니짜장면을 먹으러 가야지. 이곳에도 대기 줄이 길면 발길을 돌리려고 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다.
'유니'는 '잘게 다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곱게 다진 고기와 야채를 춘장에 볶아 낸 짜장면이 유니짜장면이다. 손이 많이 가 서울에서는 먹기 쉽지 않다. 요즘 짜장면과 달리 단맛이 강하지 않아 오히려 좋다. 한 그릇에 만 원이 예전에는 비싸다고 느껴졌는데, 요즘 물가에 비하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반주는 칭다오. 칭다오 또한 독일에서 건너온 독일인들에서 시작되었으니 결국 디아스포라의 산물이다. 짜장면과 맥주, 좋아하는 두 음식이 디아스포라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경계는 허물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어떻게든 공존하게 되어 있다. 고기인지 야채인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유니짜장이 오늘따라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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