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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이민자를 향한 ‘환대의 시간’은 저물었다.
지난해 12월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한 뒤, 독일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는 아랍어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쓴 낙서가 등장했다. 시리아인 어머니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불안함을 고백했다. 길거리에선 “아랍인은 모두 칼을 차고 다니냐”는 등 편견 섞인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이달 초 오스트리아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처음으로 범죄 전력이 은행담보대출 있는 시리아인을 본국으로 송환해 강제 추방의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 중 처음이었다. 독일도 지난 4월 시리아와 난민 송환 절차를 논의했다. 내전을 피해 유럽행을 택하는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시리아 난민을 대폭 수용하기로 결정했던 2015년과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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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탈출한 아시야 알디리(44)도 9년 전 ‘열린 국경’을 넘어 독일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독일이 난민들에게 곁을 내주던 2015~2016년 아시야처럼 독일에 들어온 난민 수는 120만명에 이르렀다. 100여만명 모두 비슷할까? 7월16일 베를린 트레프토쾨페니크에서 만난 아시야의 말 속에서 변화 여성직장인쇼핑몰 한 독일 사회의 냉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독일 국경을 넘기까지 그는 4년을 견뎠다. 2011년 11월 시리아 정부군 소속으로 일했던 남편이 갑자기 체포되고, 살던 집은 불에 타오르면서, 아시야 가족에게 시리아에서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남편은 반군에 협력했다는 모함을 받았다. 3년을 남편을 찾아 떠돌다가 2014년에야 그가 수용소에 대구신용보증 서 정치범으로 수감돼 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아시야는 “정치범은 석방 뒤에도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남편은 (석방 뒤) 먼저 튀르키예로 도망을 갔고, 난 어린 두 딸과 홀로 시리아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딸은 8살, 7살이었다. 이후 2년이 지나서야 독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북부 난민 캠프 등을 전전하다가 새마을중앙회 채용 , 두번째 시도 끝에 소형 보트를 타고 바닷길을 건너 그리스 땅에 도착했다. 첫번째 ‘밀항’ 때는 보트가 전복돼 딸을 잃을 뻔했다. 당시 독일 정부의 난민 환영 정책으로 독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아시야는 모든 게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바다엔 탈출을 감행하는 난민들의 소형 보트가 떠다닌다. 지난해 영불해협(도버해협)을 건너려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의 수는 82명이었다.
아시야가 독일 국경을 넘은 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독일 국경의 문턱은 높아지고 있다. 반이민 정서가 강화되며 메르켈 총리 후임인 올라프 숄츠 총리가 지난해 9월 독일의 전체 육상 국경 9곳을 통제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취임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더 나아가 국경 경찰력을 대폭 늘리고, 모든 인접국의 국경 통제를 강화해 주변국(폴란드·리투아니아 등)과의 갈등도 불사했다. 아시야는 “민주주의의 평등과 자유의 이상을 쫓는 독일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국경 통제로 경찰은 지치고, 효력 없는 정책으로 국민들은 더 화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상황을 지켜보는 아시야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시리아에 살았던 시절 보육교사로 일했던 아시야 알디리의 모습. 사진 아시야 알디리 제공


2016년부터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아시야의 분투는 생존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독일어를 못했던 아시야는 9개월 동안 학교 강당에 마련된 간이 숙소에 살아야 했다. 2018년, 그는 난민 신청자를 위한 통역사로 독일에서 첫 정규직 직업을 갖게 됐다. 아시야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고, 늘 화가 나 있었지만 ‘난 엄마니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며 “지난 9년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랍 여성으로서 시리아에선 제한된 사회 활동을 했던 그였지만, 베를린에서 난민 사회 통합을 위한 복지사로서 일자리 지원 상담을 하고, 사회민주당(SPD)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목소리를 키워갔다. 그는 정착 7년 만인 2023년 11월 시민권을 취득하며 독일 시민이 됐다.



옛 공항이었던 독일 베를린 템펠호프 지구 한편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시설. 2015∼2016년 시리아 난민이 독일로 대거 들어왔을 때에도 이곳은 시리아 난민을 위한 수용시설로 활용됐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아시야는 자신이 살고 있는 트레프토쾨페니크구의 이민자 참여·통합 위원회 의장단으로도 활동하며 불안에 떠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다. 2021년 베를린주 의회는 연방주 행정에 외국인 거주자와 이민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이민사회참여법’을 제정하는 등 밀려드는 이주민의 사회 통합을 돕는 노력도 했다. 그렇게 2023년 설치된 구청 산하 참여·통합 위원회는 이민 정책을 제안하고 난민들이 겪는 문제점을 적극 알리고 있다.
독일 사회 전반에 반이민 정서의 불길이 퍼진 건 2022년 2월의 우크라이나 전쟁 뒤라고 아시야는 말했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에 겹쳐 우크라이나 난민이 대량 발생하면서 커진 불안감이 이민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아시야는 “난민과 이민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해법을 찾는 게 아니라 정치권은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낳은 여러 불안을 난민을 향한 혐오로 덮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혐오는 그 대상이 된 이들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준다. 아시야는 “독일은 노동 인력이 부족하다면서도, 아랍계 이름만 보고 일자리 지원도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레프토쾨페니크구의 이민자 참여·통합 위원회 의장단으로서 이 지역 여성 난민들과 대화하고 있는 아시야 알디리. 사진 아시야 알디리 제공


그럼에도, 아시야는 혐오를 딛고 이민자를 위한 목소리를 낸다. 이민자 참여·통합 위원회 활동을 하며 현재 독일의 국경 통제를 비롯한 이민 정책의 문제점을 짚은 의견을 구청에 제출하는 등 묻히기 쉬운 이야기도 계속 공론화했다. 시리아인 강제 송환의 인권침해 문제도 위원회 차원에서 의견 표명을 할 예정이다. “10년을 독일이란 민주주의 국가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시 전쟁터로 돌려보내선 안 된다”고 했다.
독일에서 그와 두 딸의 삶도 계속될 것이다. 아시야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바닥에 뒹구는 듯 삶은 쉽지 않았다. 아직 극복되지 않은 트라우마도 있지만, 이곳에 와서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도 더 나은 난민과 이주민 정책을 위해 내가 가진 생각을 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